이상

5. 현실과의 괴리

by 이도공


현실은 늘 상상과 다르다. 상상은 늘 깨끗하고 단정하지만 현실은 늘 더럽고 찝찝한 기분이다. 아무리 먹어도 외로우면 배가 고픈 것처럼 아무리 씻어도 마음이 찝찝하면 더러운 것이다. 내가 생각해 왔던 돈을 버는 삶과 현실적으로 돈 버는 삶은 이질적이었다. 내가 사회로 나와서 가장 먼저 본 현실은 시꺼먼 속내가 숨겨져 있었고 어린 나이에 봐서는 안 될 현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못해도 내가 원하던 꿈을 준비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이.


좋게 말하면 내 길을 찾았고

안 좋게 말하면 내 꿈 하나를 잃었다.


어떻게 벌어야 멋있고 아름답게만 돈을 벌 수 있었던 걸까? 무엇이 되었든 나의 미성년자의 시기에는 모든 것이 허황으로만 채워진 이상적인 삶이었고 현실은 있어 보이지만 모든 시꺼먼 속내가 물들어있던 이기적인 수단이 가득한 곳이라


그저 내 눈엔 시꺼먼 조각상으로 밖에 안 비춰졌다.


그래서였을까? 눈을 뜨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그럼 나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고 행복한 상상을 한다. 현실 부정이었던 거겠지? 그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상상일 수도 있고 아님 방금 전에 꾼 꿈이 아쉬워 다시 연결 짓는 상상일 수도 있다. 뭐든 상상이기에 다 내 맘이었다. 문제는 그런 날이 쉬는 날이면 상관없지만 대부분은 알람을 맞춘 날이다. 꼭 이런 날에는 다시 잠에 들기 직전에 하는 상상도 하나 있다. "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많은 운을 잡는데..." 하다가 잠에 든다. 이런 상상을 하기 직전에 일어났으면 진작 '여유'라는 운은 하나 잡았을 텐데 기어코 난 그 운을 차버렸다는 것이다.


현실 부정만 하며 출근을 하고 일을 하던 어느 날, 사람들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금방 들어도 뒤돌아서면 까먹고 재차 물어봤음에도 머릿속은 하얘질 뿐, 내 귀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다가 지금 내 손안에 든 까만 커피마저 하얗게 보이면 어떡하지? 카푸치노라고 생각하면서 마셔야 하는 걸까? 걱정은 늘 나보다 앞서고 있었다.


난 카푸치노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해서 난 유당불내증으로 우유를 못 마신다. 그러니까 까만 걸 하얗게는 못 마시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날 커피를 마시다가 말고 누구의 말이 잘 들리는지, 누구의 말이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지를 생각하며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결심을 했다고 바로 "그만두겠습니다." 를 한 건 아니었고, 돈을 모아두면서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완전히 이곳에서 벗어날 시기. 프리 덤~ 의 시기?

그 시기는 언제일까? 살면서 가장 자유라고 생각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학교를 벗어났을 때의 그 짜릿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비로소 자유라고 생각한 순간에 만난 불규칙함으로 찾아낸 단 하나의 흥미. 글쓰기였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더 아팠던 그 당시에 놓쳤던 일기를 다시 꺼냈다. 성인이 되고 자격증에 열중하던 시기에 썼던 일기였다. 내 글이 뭐라고 가 아닌, 진짜 뭐였을 정도로 재밌었다. 앞서 말했듯이 난 글보단 그림이 그림보단 수학이나 과학을 더 좋아했지만 그보다 더 좋아했던 게 바로 ‘계획 짜기’였다. 처음의 시작은 일기와 블로그에 내 계획을 ‘작심 3일 챌린지’로 기록을 했었고 그다음에 찾아온 재미난 에피소드들과 힘들었던 것들을 적으면서 나 혼자만의 소소한 기록들이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언젠간 먼 미래에 “아~ 이제 살만큼 다 살았고 더 이상의 이승에는 미련이 없지만 아직 생이 더 남았다” 싶은 그 순간에 내가 살아왔던 삶을 드라마로 만들어 보려고 했던 내 먼 미래의 꿈을 발견해 버렸던 것이었다.


나는 내 말이 잘 들렸고 내 말이 가장 오래 남았었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나를 향해 펄럭이고 있었던 작가라는 깃발을 나도 알게 모르게 외면했던 걸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직은 내가 책 읽을 용기가 안 나서 외면만 하던 글이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갈 곳이 없으면 늘 향하던 발걸음은 도서관이었고, 친구가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읽을 책이 없음에도 노빠꾸 없이 따라가던 도서관을 나는 늘 가고 있었구나 싶은


현실 안의 틈은 가장 어두워 보였지만 또 그렇게 까진 좁진 않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이 꿈 또한 아직은 건축가로 다가갈 용기가 없는 회피성의 피난처일 수도 있고 언젠간 시간이 흘러 건축가라는 깃발이 원래 네 꿈은 사실 여기가 맞았다면서 날 다시 유혹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과거에 내가 가장 많이 놀았고 내가 가장 책과 가까웠다 치부하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에 가까이서라도 있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다가가 그 안에서 얻어지는 혜택이 있었다면 내가 그들에게 더 감사하고 남들의 칭찬은 성공한 뒤에서야 듣기로 하였다. 그래서 늦게나마 현실의 벌어진 틈사이로 내 꿈을 발견한 것에 나를 가장 먼저 칭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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