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5. 가짜 감정

by 이도공


사춘기 시절에 여드름으로 고민이던 친구들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넌 여드름 안 나? " 그럼 난 이렇게 말했다. "맨날 씻어서 안 나. " 친구들이 착했으니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난 그때 이미 한 대 맞았을 것이다. 근데 정말 내가 여드름이 안 났을까? 여드름이 났지만 맨날 씻고 그냥 봐주기만 했더니 금방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드름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성인이 된 스물셋에 서비스직을 하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여드름들로 피부를 장악당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며 일을 해야 했기에 생전 안 가본 피부과도 가보고 좋다는 건 다 사서 가려도 보고 정말 다 했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심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난 매일이 피부와의 전쟁중이었다. 사춘기 시절에 안 올라왔던 호르몬이 이제서야 반응을 했던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를 돌이켜봤을 때 그동안 잘 씻어주지 못했다. 일이 끝나면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면서 수도 없이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 피부는 더 무너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난 잠시 잊고 있었다. 맨날 씻고 그냥 봐주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감정과 기분은 각자의 의미 안에 속한다. 고로 감정은 기분이 되고 기분은 감정이 된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감정은 특정한 상황에서 극적인 반응이고 기분은 여러 요인이 쌓여서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그럼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은 오래 지속되는 나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반응이었던 걸까? 쉼 없이 달려왔는데 찾아오기도 하고 한참을 쉬고 있었는데도 찾아오니 말이다. 뭘 하든 무기력은 날 계속 찾아왔다. 나는 보통 이 무기력을 가짜 감정이라 부르는데, "넌 가짜야! "라고 한 번 외치고 몸을 움직이면 무기력이 쫄아서 달아난 거 같아서 내심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때부터의 나는 '진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매일 샤워를 한다. 그리고 매일 운동도 한다. 혹시나 땀이 안 나서 냄새가 안 난다고 씻지 않을까 봐 매일 운동을 한다. 매일 샤워를 하면 갑자기 찾아온 가짜 감정도 금방 씻겨 내려가고 또 동시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내 머릿속으로 파바박 들어오면서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하니, 안 씻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그냥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어찌 보면 가짜감정은 나의 도피처이자 탈출구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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