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의 고민은 나의 고민보다 더 크기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면 모든 쉽게 바라보고 쉬운 답을 얻는 거 같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나 뭐라나, 쨋든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나온 답인 거겠지. 그래서 주관적으로 바라봤던 나는 그 답에서 대게 상처를 받는 거고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은 전부 틀렸던 거를 인정해야 하니, 부정에 휩싸인 나는 결국 기어코 다른 이유를 찾아가면서까지 나를 대신해 상대를 부정하게 돼 버린다.
이 고민을 쓰려고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 더 먼 길을 돌아가는 건 그 친구가 매우 싫어하던 일이기에 더 이상은 돌아갈 수 없다. 그건 차마 그 친구를 위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친구는 유턴해서 도는 걸 싫어하니 그냥 유공이라 부르겠다.
유공이 와는 중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집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았었고 그 덕에 고등학교에 가서도 늘 같이 다니던 친구였다. 우리는 성향도 성격도 많이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통하는 게 많은 사이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뒤, 동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그 사람을 처음 만났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대에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쩐지 모르게 계속 눈에 밟혔다. 처음에는 혼자 앉아서 잘 읽는 가 싶었던 사람이 갑자기 5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정신없이 막 돌아다니다가 또 어느 날은 누구랑 그렇게 전화를 하는지… 30분가량 통화를 하고, 또 다른 날에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다르게 보였던 걸까? 괜히 신경이 더 쓰였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다 느껴졌다.
좋아하는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좋다고 편지를 써서 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그렇게 우리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매일 만났고 그 사람 역시 나를 좋아했다. 그 사람의 말은 곧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고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습관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흐름을 나 말고 아무도 몰라서 그 사람과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 사소한 습관들이 온전한 그 사람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어쩌면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는 그 행동을 따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거울을 양 옆으로 세워둔다고 해서 내가 아닌 거울에 비친 나는 진짜 나일까? 아니, 거울은 그냥 거울일 뿐이다. 나를 비춰주는 거울. 다른 누군가의 습관이 결국 나의 것이라는 걸 그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던 동시에 다른 이성도 좋아했던 걸 증명하였다. 일종의 인형놀이었달까? 나는 그 순간에 그 사람과의 모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서야 유공이에게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사람이었던 거 같다. 말은 모나게 나갔음에도 내심 유공이가 내가 착각한 거라고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단호하고 차가워진 반응에 나는 더 그 사람 편을 들게 되었고, 결국 유공이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다며 나와의 연락 자체를 피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를 위해 해답을 준 내 편에게 나는 다른 사람의 편을 들었으니 내가 잘못한 게 맞았다.
그 이후로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유공이는 일하면서 공연도 보러 다녀야 했고 친구들도 만나느라 힘들었다며 얘기를 털어놓았지만 그런데 내가 듣기에는 그럼에도 잘 놀러 다녔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유공이에게는 오히려 나의 해답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며 연락 자체를 끊어버렸다.
이미 미워진 상대에게서 무슨 말을 들어도 미운 것을... 내가 막을 수 있는 도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의 고민은 서로의 고민보다 더 크기에 각자의 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