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0. 크고 작은 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by 이도공


같이 사는 혈육과 별 일 아닌 일로 투닥거리거나 심각한 토론을 벌이고 있으면 아빠는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오셔선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늘 하시는 말씀이 "이 녀석들아! 이렇게 사소한 거에 쩔쩔매면 나중에 큰 일은 어쩌려고 그래! "라는 말로 우리들의 주제를 바로 단정 지으신다. '사소하다니! 지금까지 이거 때문에 일이 커졌는데!' 원래 큰 불의 원인은 작은 불씨하나로 커지는 게 아니겠는가.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이 말하는 작은 것들이 커 보이고

큰 것들이 작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크거나 작은 거는 상대적인 기준이고, 이것 또한 타인의 기준일 뿐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냥 주는 쉬운 문제는 이상하게 찍어도 꼭 틀리고 맨 뒤에 나오는 어려운 문제들은 찍는 족족 다 맞추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오히려 쉬운 문제를 풀 때, 바짝 긴장하는 바람에 막상 나중에 어려운 문제나 주관식이 나왔을 때는 긴장이 다 풀려서 어디서부터 뭐라고 풀어야 할지 몰라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빈칸으로 제출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 눈엔 뭐가 쉬운 문제고 뭐가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다 똑같이 풀기 싫은 문제였다. 선생님은 그런 것도 운이고 실력이라 답하셨고,


그때 이후로 아직까지도 작은 일들을 기반으로 큰 것들을 완성하는 것이 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대게 하고 싶은 말들이 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가면 내 입안에선 뭔가가 꿈틀거린다. '있어봐야 분명 침밖에 없는데. ' 가끔은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온 적도 많다. 유쾌하게 말하면 장점, 고지식하게 말하면 단점. 그래서 어쩌다가 한 번씩은 침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침묵조차도 난 크다고 한다.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내 말이 보였다고 한다. 말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좋게 포장하면 뒤끝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가 없다나 뭐라나 그런데 어쩌겠는가 크고 작은 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


그저 오늘도 나는 생각하고 꿈틀거릴 뿐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6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