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고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었던 나이에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하나 운영하고 계셨다. 식당 문 앞에는 '어서 오십시오'가 세겨져있는 짙은 녹색 발판이 항상 놓여져 있었는데 잘 걸어가던 나를 매번 미끄러지게 하기 일쑤였다. 그땐 왜 '어서 오십시오'만 있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문구는 없을까를 생각하며 날 미끄러지게 한 그 발판을 문 밖으로 살짝 밀어버리는 소심한 복수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손님들이 마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을 때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인사해 주던 매우 친절한 발판씨였던 거 같다.
북적북적한 곳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 많은 곳이 불편하다. 내가 만약 사람 많은 곳에 갔다면 그건 아마도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좋아하는 사람이 그 안에 있었다거나 그 사람이 그런 곳을 좋아하기에 그냥 따라갔을 것이다. 대신 그때는 말이 아닌 침묵만 커지기 일쑤다. 그리고 또 하나 최근에 안 사실 중에 난 굉장히 좁은 통로에서 사람들과 마주 보면서 지나가면 매우 극심한 불안 증세가 나타난다는 걸 오랫동안 날 지켜본 지인이 말해주었다. 그때는 내 옆에 누군가 같이 길을 걷고 있다면 나는 인상을 팍 쓰면서 말없이 같이 걸어가거나 인상을 쓰지 않는 대신 빠르게 그 통로를 빠져나가버리는데 대부분은 혼자 줄행랑을 치고 빠져나가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 지인이 인상을 팍 써주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내향을 넘어 폐소공포증도 의심이 되지만 그래도 그 통로를 이겨가면서 까지 가는 곳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작고 아늑한 카페다. 좁은 공간이래도 누군가 움직이지 않는 벽을 좋아하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그런 곳은 침묵이 아닌 내 목소리가 커져서 내가 그곳을 장악해 버려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는 그 지인과 함께 산책 겸 작고 아늑한 카페를 찾았다. 다섯 테이블정도밖에 없던 매우 작은 카페 겸 위스키집이었는데,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던 곳이었다. 우리는 들어서자마자 다섯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곳에 놓여 있던 2인소파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 소파를 보고 바로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었지만 다른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들로 꽉 차있었기에 별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 그냥 앉았다. 2인 소파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반형 테이블 두 개가 벽에 나란히 붙은 채 손님들의 시선이 다른 곳에 방해받지 않고 벽을 보며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둔 자리였고 소파 왼쪽에는 카운터랑 바 테이블이 붙어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카운터가 있는 쪽으로 소파와 테이블의 좁은 틈을 꽃게 걸음으로 비집고 빠져나가 아아 한 잔과 프렌치토스트 하나 그리고 히비스 바닐라티를 주문하고는 다시 우리 자리로 돌아가 음료와 디저트가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계시던 손님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사장님은 우리가 주문한 음료를 준비하시면서도 그들에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네셨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사장님의 인사말은 이곳에서의 일정은 끝났지만 남은 시간 동안엔 좋은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잘 마무리하라는 인사말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친절한 발판씨가 떠올라 아직도 그 카페를 생각하면 더 아늑했던 카페로 오래 남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발판씨는 없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