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이태원
어제는 오후부터 비가 왔다. 여행 중에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일찍 깬 것에다 집 온다고 운전을 했더니 너무 피곤했다. 수면시간을 좀 앞당겨보자는 포부로 낮잠을 참았다. 피곤하고 언짢은 마음이 베이스인 상태로 비가 내렸지. 어제 상태를 표현하자면 음,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좋겠다. 정말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인상이 막 찌푸려지고. 노래는 또 왜 이런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줍잖은 해명을 했다. 뭐 비가 오는데 기분이 별론데 어쩌고. 그 애는 우리가 전화하는데 이유가 필요한 사이냐며 웃었다. 정말 그럴까. 고마워.
신기하게 전화를 한 시간쯤 하고 났더니 기분이 말끔했다. 열날 때 보건실 가서 해열제 먹고 한 교시동안 잔 느낌. 어제는 진짜로 좋은 잠을 잤다.
아침이다. 이른 아침부터 쨍쨍한 해가 잠결에 어렴풋이 보였다. 날씨가 좋네. 애들 학교 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일어나서 봤더니 내가 창문을 아주 약간 열어뒀더라고. 기분 좋은 알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네. 이런 날은 조금 멀리 떠나봐도 괜찮은 날이다. 서울 지하철의 숨 막힘이라던가, 사람이 많은 복잡함 같은 것도 조금 견딜 힘이 있거든. 어디로 떠나볼까. 번뜩 떠오른다. 한낮의 이태원.
지금 이 글도 이태원 맥심 플랜트에 앉아서 적고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까먹는 건 이곳이 이태원이긴 하지만 한강진역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 해가 쨍쨍한 이태원을 걸었다. 중간에 약간 땀이 나길래 그늘에서 잠깐 쉬기도 함. 이태원을 걷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들에게선 알 수 없는 자유가 느껴져. 아마 다른 사람이 볼 땐 나도 비슷하겠지. 해가 떠있는 이태원 특유의 이 여유로움이 좋다. 서둘러 걷지도 않고 목적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걷는 거지. Just walk.
햇살이 사정없이 들어온다. 무릎에 닿은 햇빛이 복사열을 전달해 무릎을 따뜻하게 한다. 정말 알 수 없는 감각. 그치만 이런 순간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