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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현 May 30. 2024

20240530

월말의 고찰들

아직 밤엔 시원한 바람이 분다. 5월도 봄도 곧 끝이구나. 계절이 변하는 시기가 오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놓친 채 살고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 창문 열고 자는 낮잠, 사람 없는 평일 오후에 잔디밭에서 부리는 여유, 그늘에 앉아서 만끽하는 봄바람. 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이번 봄에는 얼마나 소중히 했나. 나는 항상 많은 걸 놓친 채로 살아간다. 그래도 뭐, 그런대로 괜찮아. 봄은 또 돌아오고 여름엔 여름만의 것들이 존재하니까. 이를테면 에어컨 밑에서 자는 낮잠이라던가, 여름밤에 선풍기 틀어두고 보는 영화. 지금을 살자는 다짐을 해보는 5월 30일. 


_1

어제는 운전해서 반포에 갔다. 그 새벽에 사람이 어쩜 그렇게 많은지. 다들 어디서 온 걸까 생각했다.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기를 썼다. 내용이 뭐였더라. 반포대교의 차들이 점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네.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좋았다. 벌레가 좀 많긴 했지만 말이야. 내 옆에 앉아있던 3명의 청년들이 기억에 남는다. 두 명은 성인이고 한 명은 열아홉 인 것 같았다. 아,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종종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일주일이면 까먹어버릴지도 모를, 전혀 관계없는 대화. 여튼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풋풋함이 좋았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 남들이 나를 볼 때 그런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참 나름 남시선 신경 쓰는 사람이라니까. 영어를 섞어서 쓰던 외국맛 나는 남자애, 입이 조금 걸지던 똥머리한 여자애, 강가에서 매너 없이 전자담배를 피우던 미니백 멘 여자애. 너희는 이 대화가 끝나면 어디로 갈까. 여긴 어떻게 왔을까. 누군가 운전을 할 줄 아는 걸까 아니면 셋 다 집이 근처인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차로 갔다. (아, 한강의 공원들은 모두 12시 이후부터 무료주차다. 12시 전에 다녀오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


_2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들었던 생각은. (흠.) 손흥민을 대단한 사람으로 키운 것은 맞지만 그게 정말 온전히 아버지인 손웅정의 재량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오은영 박사도 항상 하는 얘기 아닌가. 이 육아법이 모든 아이들에게 맞을 수는 없다고.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손웅정처럼 애 잡들 이해서 키우는 아버지 밑에 운 좋게 순종적이고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아들이 태어난 건 아니었을까. 만약 손웅정에게 나 같은 아들이 태어났더라면 그 애는 과연 손흥민처럼 훌륭하게 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도 했다. 내 아빠가 손웅정 같은 사람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엄마랑 이 얘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가 손흥민 아빠 같은 사람이었으면 나는 스무 살 되자마자 어떻게 해서든지 독립하고 1년에 두 번만 만날 거라고. 이 얘기는 조금 민감한 주제긴 하다. 허나 이게 내 생각이다. 


_3

출근이 2주도 안 남았다. 마음이 좀 심란한 것도 같네. 새로운 챕터의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저 잘할 수 있을까요,라는 나의 말에 첫 직장 사수였던 지윤님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어디서든 잘할 거라고. 그 말이 사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어디서든 잘할 거야 나는. 


괜히 머리가 좀 아프다. 또 한강이나 가야지. 운전을 하니까 이런 게 너무 좋다. 언제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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