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가 내게 알려준 봄, 4월
4월도 곧이다.
창문을 열고 권나무 노래를 듣는다. 이제야 봄인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봄은 이런 모습이었지. 평일 오후에 여유로운 상태로 깨끗한 방에 앉아 봄이랑 어울리는 노래들을 잔뜩 듣는. 권나무의 노래는 용기를 준다. 삶을 살아낼 용기, 사랑을 해나갈 용기, 나를 지켜낼 용기.
머릿속 검색창에 봄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본다. 몇 가지 기억들이 색출된다. 어릴 때 아빠 차에서 보던 벚꽃비. 나는 꽃잎이 정말 비처럼 내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양옆이 벚꽃인 도로를 달리는 차, 그런 차로 비처럼 쏟아지는 꽃잎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벚꽃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구글 드라이브에 어디 있을 텐데 찾아봐야지. 또 뭐가 있을까. 학교를 그만두던 해 4월에 수업 땡땡이치고 냅다 운동장에 나가서 햇살을 느꼈던 기억. 이 기억은 왠지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기억이다. 4월의 햇살이 그렇게 따스했나, 누군가와 함께 머무는지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구나를 모두 그날 배웠다. 그때 다짐했다. 곁에 머무는 사람은 아무나 들이지 말 것, 그리고 4월의 햇살은 지겨울 정도로 즐겨둘 것. 영감을 주고 다정을 느끼게 해주는 대화가 너무 좋았다.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는, 어떤 날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날과 사람.
4월과 봄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잠들어있던 것들이 깨어나고 마치 그 시간들을 메꾸려는 듯 한껏 자신을 뽐내보는 계절. 집 앞에 피는 목련이 그렇고 지하철역 앞에 피는 벚꽃이 그러하며 울창해지는 올림픽공원의 나무들이 그렇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봄이 오면 나를 더 사랑해 주고 싶다. 춥고 길었던 겨울을 이겨낸 대견한 내가 한껏 피어나게 해주고 싶다. 그런 마음에 외출마다 한껏 멋을 내보는 계절. 그게 봄이다.
생각해 보니 봄을 누군가와 함께 맞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어리고 설레는 마음에 벚꽃나들이, 봄데이트 이런 영상들을 찾아보게 된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데이트 브이로그를 몇 개쯤 보다 보면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런 내가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작년까지만 해도 분명 봄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래봐야 똑같은 풀때기일 뿐이야 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음, 꽃구경이 가고 싶다. 봄을 한껏 느끼고 만끽하고 싶다. 그 상상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건 꽤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항상 기획만 하고 추진력이 없는 나에겐 좋은 추진제가 되기도 하고. 혼자만 하면 망상인 것을 둘이 하면 실행까지 옮길 수 있다. 하. 양옆이 꽃인 도로를 권나무가 나오는 차로 운전해서 달리는 나랑 너, 요즘 이런 상상을 하는 게 나에게 꽤나 건강하고 즐거운 행위이다.
거울 속의 내가 꽤나 마음에 든다. 스트레스가 적은지 깨끗해진 피부도, 여전히 조금 매섭긴 하지만 또렷한 눈매도, 기능은 잃었지만 아름다운 코도, 조금 옹졸하게 작은 입술도, 살이 조금 쪘더니 덜 도드라지는 광대와 턱까지. 머리는 뭐 항상 예쁘니까 패스하고 요즘은 옷도 마음에 든다. 짝꿍이 부업으로 이도현 스타일리스트를 시작한 뒤로 옷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든다. 그전에 내가 이상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요즘 좋다. 이런 것도 타인이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받는다라,, 내가 살아온 나의 세계에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는데 그걸 요즘 내가 하고 있다. (내 세계의) 과학으로는 증명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 항상 그 가능성을 닫지 말아야지. 내가 어디까지 나아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그거 자체가 삶일지도 모른다. 삶은 끝없이 내가 되는 과정이라고 했으니. 나는 꾸준히 더 나은 내가 된다. 그게 삶이다.
나를 좀 더 사랑해 주고 싶은 계절 4월. 이번 4월엔 나만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한다. 좀 애 같긴 한데 너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