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것들

가을, 생일, 이사, 입대

by 도현

변화의 폭풍이 몰아친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찌 그리 초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도 나에게 묻는다. 넌 어찌 그리 초연하니. 초연하지 않다. 사실은 울고 싶다. 그냥 어린아이처럼 가기 싫다고, 하기 싫다고 떼쓰고 싶다. 그치만 지금의 나에겐 그렇게 낭비할 시간도 체력도 없다. 그래서 그냥 흘러가는 시간과 다가오는 변화의 앞에 머무른다. 지금을 한껏 느끼는 게 미래를 생각했을 때 가장 나은 선택일 거라고 확신하니까.


가을이다. 날씨가 너무 좋다. 창문을 열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비가 줄기차게 오더니 오늘은 하늘이 너무 예쁘다. 도쿄의 하늘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것보다 열 배는 더 예뻤는데. 도쿄에서 보냈던 한 달이 벌써 한 달 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정말 눈만 감았다 뜰 때마다 하루가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눈을 서른 번쯤 감았다 떴을 뿐인데 한 달이 지났다. 너무 빠른 시간의 흐름 앞에 나는 그냥 한없이 무력한 인간 1일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다.


생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결국 올해도 와버렸구나. 왜 이렇게 기대가 안 될까. 분명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생일인데. 그냥 시간이 흐르는 게 싫은 것 같다. 생일도 추석도 필요 없으니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바라자면 두 달쯤 전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고. 사람이 국면에 다다르니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 가능하지도 않은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것에 너무 많은 품이 든다. 근데 정말이야. 진심이야.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한 달 후면 이사를 간다. 6년 동안 살았던 집과 태어나고 평생 동안 살았던 강동구를 떠난다. 상상이 가는가. 솔직히 이걸 이렇게 글로 쓰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다. 떠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더 이상 강동구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건 인정하기 싫다고 달라지는 사실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다. 내가 다녔던 학교가, 내가 놀았던 천호동이, 내가 탔던 5호선이,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방이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있는 강동구가 나의 기억 속에만 남는다. 야만스럽군.


입대. 대한민국의 이십 대 남성(나 진짜 이걸로 날 설명하는 게 싫었는데)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언젠간 가야 할 걸 알면서도 그때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입대날을 받아놓고도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안에 세상이 멸망해버리거나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녀석은 멈출 줄을 모르고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위로랍시고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기간도 짧고 돈도 많이 준대.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맞는 말인데도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이십 대 중 1년 6개월을 어딘가에 바치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간만에 긴 호흡의 글로 적어내니 상당히 절망적인 내용들이 되었지만 요즘 내 상태는 사실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 않다. 물론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절망타임을 갖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사실은 너무도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중에 억울하지 않을 만큼 놀고, 딱 노는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일하고, 아쉽지 않을 만큼 행복하다. 내 앞에 놓여있는 상황들은 나에게 절망을 주지만 내 옆에서 나와 함께하는 것들은 나에게 희망을 준다. 어차피 결국은 내가 행복하게 살 거라는 확신을 준다. 내가 어떻게 초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어차피 나는 행복하게 살 거니까. 지금의 나를 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며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삶. 행복할 수밖에 없다.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