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단상
학원을 하는 부모님과 가끔 통화를 하면 일베하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민주당 골수 지지자에 전라도 출신인 우리 부모님 보시기에 일베는 그야말로 미치광이인지라. 학원생이 어쩌다가 일베한다는 걸 들키면 그날은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어머님은 한숨을 쉬시며 '도대체 왜 그런걸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라고 하시곤 한다. 그때마다 나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일베가 주는 자극이 아이들에게 매력적인게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왔다.
근데 하단 링크한 칼럼을 통해 일베에 대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점들을 알게 됐다. 내가 이해한 칼럼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10대 때 의례 겪기 마련인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감과 진실에 대한 욕구 등이 어우러져 일베가 말하는 진실에 빠져들게 된다. 일베가 아이들에게 '진실을 아는 쾌감'을 제공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진실을 향한 욕구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들 겪었듯이, 10대때 그 욕구가 강렬하게 발휘된다. 생각해보면 정규교육이란 얼마나 따분한 일이었나.역사상식이니 뭐니 해 봤자 그 모든 것들은 '다음 중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따위의 시험을 위한 도구나, 재미없는 선생의 지루한 이야기로 기다가올 뿐이다. 근데 어쨌든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인격체이니, 어렴풋이 뭔가 또다른 진실이 있는 것 같고. 근데 꼰대들은 짜증나고. 그러다가 어느날 뭔가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문건을 만나게 되면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건 나만 아는 건가? 이 사실을 왜 학교나 어른들은 가르치지 않지? 뭔가 이 진실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세상의 부조리? 이건 내가 중딩때 [신라,고구려,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라는 환단고기 역사책에 열광했던 이치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더 자극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지금 시대도 반영이 됐을 것이다. 시대 자체가 일베에게 유리하다. 어른의 세상이 더 폭력적이 된 만큼 유년기의 세상도 그렇게 변했다. 경쟁은 심화됐고 약육강식의 논리는 생활에서 더더욱 뿌리까지 스며들었다. 그런 세계에서 인정투쟁과 관심촉구가 폭발하고 타인에 대한 비하로 능력을 측정하는 일베식 서사가 더 설득력 있고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10대일수록 더 잘 알 것이다. 희생하며 살거나 연대해서 사는 사람 치고 시험점수 잘 맞는 경우 드물고 대학 잘 가는 경우 드물고, 잘 사는 경우 드물다는 걸. 심지어 일베하는 일은 툭하면 사회에서 지탄받는 일 중 하나니 더더욱 진실로서의 위치를 획득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슬픈 것은 교과서 속 이야기들이 일베인들이 생각하듯 온전한 거짓도, 일부의 일베 비판 세력이 생각하듯 지켜야할 온전한 진실도 아니라는 점일 게다. 오히려 더 개정되고 추가되어야 할 반쪽의 진실들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교과서엔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전의 학살도 없고 문민정부 이후 일어난 수많은 탄압도 없어 사회의 상처들은 꼭꼭 숨겨진 채 성과만이 남아있는데 그게 무슨 온전한 진실이거나, 온전한 가짜일까. 어쨌든 일베하는 10대가 열광할 그 '진실'은 사실 기성세대가 체화한 논리이고 권력층이 원하는 질서라서 이전 세대가 교과서 밖에서 찾았던 진실에 비하면 그야말로 가짜다. 그러나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불과 10년~15년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에만 해도 광주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했던 시대가 있었다. 광주라는 이야기 자체가 해금된지 얼마 안된 시기에는 광주의 생명력이 아직 약동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 광주도, 87년도 '교과서의 내용' 이 되어 꼰대들의 따분한 이야기가 됐다. 교과서 너머의 '팩트'는 일베의 몫으로 돌아갔다. 물론 아직 교과과정에 없는 진짜 진실들이 있고, 중고등학교때부터 그 진실을 찾아가려는 사람들 또한 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일베의 진실에 혹하는 사람들보다 많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정권의 교육현장에서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것은 실패했고 그 반작용은 그대로 지금의 10대가 껴안게 됐다. 내가 지금 10대라면 나도 일베에 빠져들었을 거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넘어서는 '생생하고' '살아있는' 진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사건의 묘사, 후광에만 의지하는 것은 생명력이 곧 소진된다. 우리가 겪었듯이 그런 영향은 끽해야 20년도 채 가질 못한다. 끊임없이 지금 여기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일베가 노무현을 비하하건 말건 관심 없다.적어도 이 시궁창에서는 딴지일보나 트위터에서 박근혜를 욕하는 수준을 보면 노무현을 욕하는 수준이 차라리 양반처럼 보일 지경이니. 대통령 좀 비하하기로서니 뭐 좀 어떻단 말인가.
결국 문제는 광주와 세월호에 대한 태도. 무언가 인간다운 삶을 찾고자 싸우는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 사회적 소수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느냐의 여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서사들에 10대의 진실을 향한 호기심을 끌어들일수 있는 힘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그런 게 광주를 믿고, 세월호를 믿고, 용산과 쌍용차를 믿으며 SNS에서 글이라도 한번씩 쓰고 공유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부딪히고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