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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Nov 01. 2020

정말 스킨인더게임이 문제일까?

나심 탈레브 <스킨인더게임>

1) 특정 이슈나 카테고리에 과몰입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속으로 떠올리는 말이 있다. '판돈을 건 만큼만 화내자'. <스킨인더게임>은 이런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요지는 리스크를 직접 감당하며 피 튀기고 살 찢어지는 판 (스킨인더게임) 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내리는 판단/충고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안 해본 경제학 교수, 서민 생활을 겪어본 적 없는 정치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국 국무부 공무원.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게 중요한 대기업 임원.. 뭐 이런 사람들 얘기다. 나심 탈레브는 책임과 선택이 괴리되어 있는 현재 상황이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간다는 문제의식을 책 내내 펼쳐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책임에 대한 윤리를 갖추는 것,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파멸로 치닫는 테일 리스크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 분권화를 통해 실행하는 이와 책임지는 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힐 것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1인분의 삶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이 책은 상당히 뼈아프고, 설득력 있다. 책임질 수 있는 행위를 해라. 말을 했다면 거기에 대해 책임져라. 당연한 얘기지만 어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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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내 개인의 차원을 떠나서 생각을 좀 해보면, 나는 '스킨인더게임'을 강조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로 이게 이 세계의 근본적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 정치권이나 경영, 지식인들이 현장을 모른다는 이야기는 꽤 예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그런데 현장에서 부대끼고 현장을 잘 파악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긴 한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상층부는 과연 스킨인더게임을 안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해봤는데..'로 대표되는 발전없는 꼰대 기질. 초기에 확립된 공식에만 의존하여 '이게 진짜 현실이지'라며 관성으로 굴러가는 조직. 과거 군사정권 시절 노동조합의 파업 개입을 막기 위해 악용됐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  문제 해결을 요구할 때마다 '너희가 현실정치를 몰라서 그래' 라며 자신들의 스킨인더게임을 이야기하는 정치인과 지지자들.  응당 져야 할 책임에 대해 사회적 압박을 가하면 '한국은 기업 하기 너무 어렵습니다'라며 불쌍한 이들이 되는 높으신 사장님들. 편협한 공정 기준으로 자신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이들.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냐고 비웃는 이들... 이 모두가 자신은 스킨인더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선택에 영향받는 이들이 겪게 될 상황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지라도, 그들이 자신의 세계 내에서 나름의 리스크를 지고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치인은 그저 지위를 잃을 뿐이지만 잘못된 정책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뒤집어 놓는다. 그러나 지위를 잃은 정치인은 자살을 생각한다. 그들 또한 나름 자기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걸고 진검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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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엇보다 현장을 안다는 것은 곧 현장의 논리에 종속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한다. 실무는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또 실무를 넘어선 종합적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그런 과정 없이 일은 진행되지 않는다. 정치에도 이와 같은 부분이 있어서 자신이 속한 지역 /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서 사고해야만 나심 탈레브가 말한 '공동체에 헌신하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인간의 특성상 스킨인더게임이 반복되면 이 선택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탈레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용기'라는 미덕을 제시하지만 이것은 사실 초인의 경지에 가깝고, 좋은 해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탈레브가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비판하는 기존 시스템들조차도 단순한 태만의 결과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집중이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방지하고, 문제를 수정할 수 있도록 고안된 형태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잘못된 판단을 하는 '높은 이들'을 끌어내리거나 선택권을 가져오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논리가 '너희는 현실을 몰라'나 용기 있는 몇 사람(필요하지만)이 될 수는 없겠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이 다양한 '현실'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는 정치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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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두 권의 책을 떠올렸다. 하나는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쓴 <미국의 반지성주의>. 미국의 근간 중 하나인 반지성주의의 역사적 근원을 찾는 이 책에서 '실용주의'에 관한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유럽이라는 구세계로부터 탈출했다는 자부심, 개척의 경험 때문에 지금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지식만이 유용하다는 미국의 전통이 미국의 교육 근간을 악화시키고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정말... 틀린 말이 딱히 없다. 그냥 뭐 바르게 살자 배움을 즐기자 인생은 잔인한 거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강하게 살아라... 블라블라 블라. 


  스킨인더게임은 그 책에 비하면 훨씬 반전 있고 의미가 있는 책이지만, 개인 단위 이상의 윤리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윤리로 세계의 문제를 해석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같은 포지션에 있다.


 이런 이유로 나심 탈레브의 실용주의적 주장들을 반지성주의라거나 우파의 단서라고 말하는 건 과한 억측이겠다. 그리고 책임윤리를 요구하는 그의 주장은 분명 핵심을 찌르는 면들이 있다. 


 다만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살아남은 것이 옳은 것이다. 복잡한 것은 필요 없다.-이 풍기는 해법이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진다. 공동체에의 헌신을 이야기하지만, 거기로 가는 길은 그저 개인의 용기밖에 없는 이 방법이 정녕 진실인가? 아니면 그저 나의 편견일까. 그것조차 내가 스킨인더게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책장을 덮었지만 다시 한번 곱씹어보고, 그의 주장들에 대항해 보고 싶다. 이래저래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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