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별 거 아니라는 생각.
뚱카롱 팔던 커피집이 다른 커피집이 됐다. 아쉬웠는데 커피를 받아보니 슬리브가 이쁘다.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요즘 디자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도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양 형태 색 그리고 존재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곡선보다는 직선. 보라색과 파란색. 명조나 필기보다는 고딕. 애플보다는 마이크로소프트. 라인 노트보다는 무제노트. ef펜촉에 블루블랙 잉크. 2010년 전후의 홍대 인디씬 음악. 리듬앤베이스. 색도 형도 심플한 옷...취향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취향도 일종의 실험-결과의 반복이라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을 실제로 입거나 써보고 수정한 것도 꽤 많다.
아마 그런 게 반 이상 될 것이다. 이걸 알고 나면 사실 취향이란 게 별 게 아니고 나 자신(그런 것도 사실 없는 거겠지만)과 등치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소비를 통한 방법 말고 표현할 수단이 없으니 결국 계급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맛있는 맥주 찾아 삼만리 길을 떠났다가 결국 카스만한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랑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취향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개발하는 일에 시큰둥해졌다. 혹은 그걸 변명삼아 새로운 것들을 맛보고 즐기고 감상하는 일들에 대해서 거리를 두게 됐다. 어찌보면 게을러진 것이고. 내 안에 취향의 개발로 바뀔 것들이 이젠 없다는 실감을 했기 때문 혹은 이미 나름 개발을 위해 신경썼던 시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그런 것들은 정말 그냥 우리 자신의 아주 작고 작은 일부분이고 또 개발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란 변명을 하면서...(정치적 성향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은 사실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고 실상 그닥 우리와 관련도 없다. 그래서 사실 우리 모두는 직관적으로 그게 곧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그렇다면 취향이란 대체 어디까지 의미가 있는가. 인스타그램의 시대에는 별로 걸맞지 않는 생각이라 슬프군. 하지만 소비를 통한 취향의 개발은 접어두더라도 공부하고 세계를 탐구하는 일 만큼은 시큰둥해지지 말아야지. 둘 사이를 가르는 기준도 아직 찾지 못했지만, 다행히 아직 나는 알고 싶은 것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