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와인잔을 보며
어제 술자리에서 나온 와인 잔이 참 이뻐 계속 눈에 담았다. 수돗물을 담아 마셔도 취할 것 같은 잔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낼 능력이나 나만의 미학이 확고해 다른 이를 내 미학으로 설득할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인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
다만 내 눈 앞에 아름다운 게 보이면 그게 아름다운 줄은 안다. 그리고 그게 왜 내 눈에 아름다운지를 찾아보고 이유를 따져볼 능력도 있다. 나는 모두가 그런 능력을 본디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쓸모한 꽃을 보며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다. 감지덕지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 요즘이다. 결국 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물건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구와 세상의 여러 측면에 대한 존중과 탐구는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 미감이 정말 나의 감각인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이게 진짜 미감이 아니라 그저 어떤 동경에서 나온 시기나 욕구라면 나 자신이 그런 감각을 존중해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반대를 배제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내 주변에서 정말 뛰어난 미감을 지닌 사람들은 세상의 빛과 어둠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제 찍은 이 예쁜 잔 하나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아름다운 물건의 힘이기도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