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 혁명국가 이야기

<블랙 자코뱅>

by 줄타기인생

카리브 제도의 작은 나라인 아이티는 극빈과 정치적 혼란, 자연재해로 인한 파국적 상황으로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자아내는 나라다. 하지만 이 나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나라이기도 하다.


왜냐면 아이티는 최초의 흑인 노예 혁명을 통해 건국된 국가이고,식민지 독립으로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였기 때문. <블랙 자코뱅>은 아이티의 흑인 노예 혁명과 혁명지도자 투생 르베르튀크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적으로, 읽는 내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역동성, 혁명과 같은 급변상황에서의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


독립 전 아이티는 산도밍고라는 이름을 가진, 프랑스의 번영하는 식민지이자 잔혹한 노예 학대 사회였다. 증가하는 노예경제에 맞춰 아프리카에서 끊임없이 흑인 노예가 공급되었다. 완전히 복종시킬 수 없는 노예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불안은 증가하고 있었고, 이에 맞춰 백인의 학대행위가 급격히 늘어났다.


백인은 번영하고 흑인은 죽어가는 이 사회에서 혁명을 불러온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프랑스 혁명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고취된 아이티의 흑인들이 자신들을 압제하는 사회를 전복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교양과 지도력을 갖춘 노예 출신의 투생 르베르튀크가 불세출의 지도자로 거듭난다. 결국 그가 이끄는 흑인사회는 프랑스 혁명정부의 노예제도 폐지 정책승인을 끌어내게 된다.


그러나 나폴레옹 정부가 들어서고, 아이티의 노예제도 복귀를 위해 프랑스군을 파견함에 따라 투생은 파멸로 들어서게 된다. 사회 건설을 위해 프랑스의 선진기술이나 자본이 필요하다 생각했으며, 그 자신이 프랑스 혁명의 대의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터에 그는 프랑스와의 연결고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몇가지 실수를 한다. 이로 인해 흑인 민중의 민심을 잃고 결국은 프랑스로 압송당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0b14a952029d2707c9932acad220df47.jpg 투생 루베르튀르

마지막의 안타까움과 별개로 책을 읽다보면 이 인물의 대단함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을 직접, 공정하고 열정적으로 처리했고 뛰어난 군사지략가였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다. 백인사회의 선진문명이 새로운 사회를 위해 필요했음을 알았으면서도 절대 백인의 도덕적 우위 따위에 환상을 가지지 않았고, 남녀노소, 계급, 인종을 떠나 모두를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단 한번도 흑인민중의 완전한 자유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혁명이 빚어낸 인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의 목표 중 하나가 아프리카를 프랑스령으로 만들어 흑인 해방을 실행하는 거였다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남을 쉽게 믿지 못하여 결정의 근거를 공유하지 않은 것, 프랑스의 대의를 믿은 것과 같은 그의 몇가지 결점과 급변상황에서의 판단미스- 흑백갈등 상황에서 갈등봉합을 이유로 백인의 편을 부조리하게 들었던 것- 그와 그가 꿈꾸던 사회를 위기에 몰아넣게 된다.


-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티는 그의 사후에 독립에 성공한다. 독립을 이끈 인물은 투생의 부관이었던 데살린이라는 인물인데, 그 또한 흑인노예 출신이다. 그가 투생과 달랐던 점들이 나폴레옹 정부와의 전쟁상황에서 아이티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나 상황을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여 주변 사람들을 고취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투생의 목표가 자유를 넘어선 근대화된 문명사회였다면, 데살린은 프랑스의 문명과 정신, 백인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오직 자유만을 목표로 했다. 향후 데살린은 아이티 독립 후 황제로 취임하고 미-영 제국주의자들의 이간질에 따라 -아이티 내 백인을 모두 축출하면 무역을 재개하겠다- 아이티 내 백인을 모두 학살, 축출하게 된다.


Jean_Jacques_Dessalines.jpg 장 자크 데살린


이러한 걸출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에 더불어, 책을 읽으면 몇가지 진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된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짐승이 될 수 없다는 것. 자유와 평등은 한번 주어진 순간 절대 뺏아갈 수 없다. 백인들은 수없이 많은 시간 흑인들을 학대하고 지성이 없다고 그들을 무시해왔다. 심지어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아이티의 흑인들이 자유 평등 박애를 알게 된 순간 취했던 행동들을 보면, 인간의 굴종은 그저 더 나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들은 프랑스 본토의 혁명군보다도 더 혁명적이고 인간적으로 굴었으며 백인들이 자신들에게 자행했던 학대행위를 번복하지 않으려고 했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지금, <블랙 자코뱅>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결코 선택적으로 타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발명자들이 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혁명적인 발명품이자 불가역점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두번째로 우리가 동경하는 서구문명의 이중성이다. 투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문명의 선진성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들이 문명을 쌓아올리며 저지른 수많은 잔학행위가 얼마나 인류에 누를 끼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아이티만 해도 그렇다. 이 작은 나라의 현재진행형 혼란과 빈곤을 불러온 원인은 아이티 독립 과정에서 발생한 백인 축출로 인한 (그것도 영-미의 도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프랑스의 과도한 보상금 청구로 인했다는 점이 서구문명이 지난 세기 끼친 지구 곳곳의 해악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프랑스혁명의 아이들이지만 위에 말했듯 그 혁명의 기반은 착취에 기반한 사회의 번영과 갈등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과 같은 국가의 번영은 얼마나 다른가? 아이티의 흑인노예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착취받고 차별받는 이주민과 해외,국내의 노동자들, 한국의 무기수출로 고통받는 국가들 등등, 우리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이중적인 번영의 후계자들이다. 그렇다면 ‘자유 평등 박애’의 관점에서 세계와 사회의 문제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정부 의회에서 모두가 흑인노예제도 폐지를 만장일치로 외쳤던 것 처럼.


238569832_4434622973261468_4056420480486229529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냉전의 지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