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소련 그리고 제 3세계
냉전 시기 미-소 양국과 제3세계의 관계를 다룬 역사책. 책의 접근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냉전에서 중요한 국면들은 유럽 지역 경쟁이 아니라 제3세계에서의 사건들이라는 것.
미국과 소련 둘 다 반식민주의 국가로 시작했으나 제3세계 국가에 대해 그들이 취한 방식은 전 시기의 제국주의 국가가 취한 방식들-미래에의 청사진 강요, 군사적 개입, 반대파의 말살 등-과 놀랍도록 유사했다는 것.
그 결과 소련과 미국이 개입한 지역은 지뢰와 빈민, 영속하는 갈등만이 남았고 (미국이 개입한 30여개국 나라 중 미국의 모델이 성공한 것은 대만과 남한 뿐) 미-소의 청사진이 쇠퇴한 곳은 이슬람주의를 위시한 극단적인 정체성 정치가 범람하게 되었다는 게 책의 지적. 최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점령과 맞물려 더 시의성있게 읽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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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는 최근 미국의 개입주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중국의 홍콩 문제나 아프가니스탄 문제. 조금 더 올라가서 트럼프 정권 시절의 아메리칸 퍼스트에 대비되는 바이든 정권의 상대적 호감(?)으로 인해 미국의 개입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정책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켜왔는지 책을 보면서 실로 오랜만에 다시 깨닫게 됐다. 뉴스를 보면서 느끼듯 아프간의 지옥도는 일정부분은 미국의 80년대 대외정책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한 것. 미국 개입에 대한 호감은 그 모델이 유이하게 성공한 남한-대만사회에서나 가능한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본다면 결자해지라는 측면에서 또 미국의 개입이 결국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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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현지 엘리트와 민중의 역할. 냉전 시기의 주요 동인은 미-소 양국 뿐 아니라 미국의 자유와 소련의 정의, 더 나아가서는 그 두 국가가 제공하는 근대화된 사회에 심취한 현지 엘리트들이기도 하다. 냉전 시기 제3세계의 지옥도는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전개되는데, 현지 엘리트들이 국가를 개조하기 위해 정치적인 액션을 취하고, 미국이나 소련과 동맹을 맺고, 그 무리한 과정 속에 민중의 반감을 산다.
그래서 결국 국가개조는 강대국과 현지 엘리트 연합이 민중을 대상으로 전쟁을 하는 형태로 귀결되고 만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놀랄 정도로 많은 경우 제 3세계 농민은 투쟁을 선택했’고 ‘마을에까지 마수를 펼치는 수입된 국가에 대항해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
이 과정은 내가 알기로 한국에서의 과정과는 꽤 다르다. 일본제국 시절 식민지 상황이 미-소 양국의 개입을 통해서 해결되었고, 국가형성 초기단계에서 절멸에 가까운 내전을 겪으며 각 진영에서 반대파를 멸종시킬 명분과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가 형성된다. 그런 진공상태에서 남,북이 각각의 모델을 반대파나 민중의 저항 없이 강요하여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런 경험이 결과적으로 한국인의 세계사에 대한 다소 좁은 인식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들. 여럿이 읽고 얘기해보고 싶은 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