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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04. 2022

06. 입원, 또 입원.

 *이 글을 느리게나마 남기는 이유는 조울증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겪었던 일과 같은 일을 겪고 있을 분들이 계시다면, 잠깐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전달해드리기 위함입니다. 왜냐면 제가 일을 겪을 때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필요했거든요. 저는 정신과 질병에서 그 어떤 방법보다도 의학전문가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을 포함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제 가족도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신다면, 부디 병원의 도움을 받기를 꼭 권해드립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가 가족여행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나는 이 기회에 처음으로 외가 식구들 모두가 함께 제주도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엄마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그렇고, 이번 일로 난리를 겪은 외가 식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를 병원에 두고 여행을 가는 일이 어찌 마음이 편하기만 하겠냐만은 일주일 가량 여행을 가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들 마음이 한층 유해졌다. 아빠 마음이 상할까봐 아빠한테 전화가 올 때마다 여행이 아닌 척 둘러대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식구들, 특히 엄마는 몹시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는 첫날 영문모를 소리를 했던 아빠에 대해 수일 간경과를 지켜본 뒤, 조울증으로 최종 판단을 내렸다. 지난 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자살시도를 한 환자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입원은 필수적이었고, 우울증,조현병,조울증 등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통제된 환경에서의 관찰을 통해 병을 밝히고 약을 맞춰야 했다. 아빠도 살짝 정신이 들었는지, 입원 첫날 얘기했던 것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그때 이후로 입원 환자 모두가 마찬가지이듯이 계속해서 엄마와 내게 전화를 해서 '퇴원시켜달라, 이젠 괜찮다'고 말하는 날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뿌리를 뽑아야, 약을 맞춰야만 다시 들어갈 일이 없으니 참고 또 참으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흔들리는 엄마에 대해서도 나는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의사와 병원을 믿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는 주말이나 짬이 날 때마다 병원에 방문해서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병원에서는 더 입원시키는 게 좋지만 그래도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받는 것도 괜찮다는 판정이 나왔다.


 2020년 초. 아빠가 퇴원하는 날은 정말로 다들 기쁜 분위기였다. 병원을 벗어난 아빠는 말할 것도 없고 엄마도 나도 이제 약만 잘 먹으면서 케어하면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를 낙관했다. 외삼촌 부부가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템플스테이를 다녀왔고, 아빠는 절 인근 둘레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다시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강원도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렇게 잘 지내겠거니...했지만 항상 얘기했듯 우리는 병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약 4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빠의 상태는 다시 안좋아졌다. 일조량이 부족하고 추운 곳이라는 환경의 문제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빠가 몇달간 약을 빼먹거나 드문드문 먹고 있었다. 가장 최악이라는 단약을 하고 있었고, 우리 식구 모두가 그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히 망상과 집착이 다시 심해졌고, 우울감에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은채 방 안에 24시간 누워있었다. 시골은 해야 할 일이 봄이나 겨울이나 많다. 예전에는 아빠가 했던 일을 엄마가 해야 하게 됐고, 아빠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엄마는 대꾸도 없는 아빠와 함께 보내는 일이 기약 없는 지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생전 화라는 것을 내본 적 없는 엄마의 화가 많아졌고, 전화로 하소연 하고 혼자 우시는 일들이 많아졌다.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결국 삼촌이 강원도로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전주로 갔고, 나도 바로 내려갔다.


 아빠의 상태를 보니 정말로 좋지가 않았다. 자살 직전 상태와 거의 비슷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병이 환자를 지배하고 그 모습을 드러낼 때는 내가 아는 얼굴이고 내가 익숙한 목소리임에도 정말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빠가 말을 하고 아빠가 행동하는 게 아니라 조울증이 말하고 조울증이 행동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고, 몇겹의 단단한 관 속에 아빠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안가고 버티는 아빠를 짜증내고 어르고 달래며 겨우겨우 설득해서 부랴부랴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찰 후에 주치의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하다. 다시 입원치료를 요하는 상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엄마가 24시간 붙어있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지만 첫 발병때와는 다르게 엄마는 이미 4개월동안 아빠의 병에 시달려서 당장 엄마의 정신건강도 불투명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빠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입원이 필요해 보였다.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아빠 엄마와 차를 타고 오며 아빠를 설득했다. 한번만 더 입원하자. 이번에 정말 뿌리를 뽑자...아빠는 당연히 안된다고 했고, 그때부터 1시간 가량 아빠와 엄마와 나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엄마는 여기서 입원 안하면 우리 가족의 인연은 끝이라고 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입원해달라고 화를 냈다. 아빠는 통원치료를 받겠다고, 엄마가 돌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아빠에게 입원 후 약을 다시 맞추고 호전되어 나오면 다시 잘 지낼 수 있는데 좀만 더 참아달라고 했다. 그때 아빠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엄마랑 네가 날 버릴 거 같아."




 병에 먹혀서 말도 제대로 못하던 양반이 꺼낸 말이 그거였다.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그거는 아마 병의 목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엄마는 아빠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아빠가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러다가 엄마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불쌍하다가 화가 나고 화가 나다가 또 불쌍한 마음이 들며 복잡한 마음에 벌컥 화를 냈다. 앞으로 엄마랑 나 찾지 말아라. 아빠는 이기적이다 실망스럽다. 안녕이다...아빠가 체념한듯 말했다. 밥을 먹고 입원 수속 밟으러 가자.


결국 엄마도 나도 아빠를 붙들고 울었다. 내가 당신을 왜 버리냐. 완치는 바라지도 않는다. 올 초 퇴원했던 수준만 회복되도 된다. 자주 오고 자주 연락하겠다.


입원수속을 밟으니 코로나 때문에 하루는 격리병동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마음이 덜컥 했다. 아빠는 모든 걸 포기한 듯 알았다고만 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와서 편하게 있다 가시면 된다고 아빠를 안심시켰고, 아빠는 다시 황망한 표정으로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아빠의 두번째 입원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이 병은 평생가도 병식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약을 꾸준히 먹이는 게 최대 목표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엄마가 지난 몇개월간 이렇게 해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며 포기하는 가족도 많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병이 생겼는지는 아빠가 없는 동안 관찰하기로 했다. 그렇게 입원 수속을 밟고, 외갓집으로 돌아와 찐이 빠져 잠을 청했다. 그리고 한창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로 인해 병원 면회를 차단한다는 발표가 몇주 후 났다. 그렇게 고난의 두번째 입원이 시작됐다.


 힘든 이야기라서 미리 적어보자면, 다행히 아빠는 이후 퇴원한 뒤로 2년간 입원 없이 지내고 있다. 앞으로도 그 두번째 입원이 마지막 입원이길 바라고 있다. 그때 주치의 선생님이 입원을 권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러나 아빠의 그때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시종일관 아빠의 입원과 약물치료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빠의 두번째 입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약을 끊으면 괜찮지 않을까? 멀쩡한 사람이 약으로 저렇게 된 것 아닐까? 단순 우울증 아닐까? 이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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