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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27. 2021

05. 조증. 그리고 입원.

 *이 글을 느리게나마 남기는 이유는 조울증에 대한 의학적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겪었던 일과 같은 일을 겪고 있을 분들이 계시다면, 잠깐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전달해드리기 위함입니다. 왜냐면 제가 일을 겪을 때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필요했거든요. 저는 정신과 질병에서 그 어떤 방법보다도 의학전문가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약물을 포함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제 가족도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같은 상황을 겪고 계신다면, 부디 병원의 도움을 받기를 꼭 권해드립니다. 



 일반병동 2일차의 밤이 찾아왔다. 2일차는 엄마가 같이 있기로 해서 숙소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숙소에 있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갑자기 나왔지만 어쩌겠나 생각하며 슥슥 닦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섬망은 1일차만큼 심하게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아빠는 어제 그런 난리를 피운게 꿈처럼 느껴질만큼 멀쩡해졌다. 자기가 지금까지 실수한 거 같다고. 지금은 정신이 아주 또렷하다고 앞으로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새벽에 엄마와 나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어찌나 기쁘던지! 마음을 놓고 잤고, 퇴원해도 문제 없다는 안내도 받아서 늦은 오후 멀쩡해진 아빠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단, 아빠의 정신과 치료와 입원 여부를 판단해보기 위해 외가 근처의 입원병동이 딸려있는 정신과 전문 병원으로 출발했다. 자살 시도자는 재시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입원이 강력 권장되기도 하고.


 가는 내내 아빠는 속에 있던 말들을 다 쏟아냈다. 세상 과묵하던 사람이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니 변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과 지난날의 후회를 쉼없이 쏟아냈다. 오죽하면 엄마가 농담으로 차라리 과묵하던 때가 낫겠네 할 정도로 쉴새없이 떠들었다. 자신 안에 사춘기 소년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 소년이 웅크리고 아무 말도 안했던 거라고. 그런 게 이제 다 풀렸다고. 부처님 말씀도 자신이 너무 좁게만 해석하고 편협하게 굴었다고. 이제는 주변 사람 마음 편하게 해주는 목표로 살겠다고 했다. 20년을 채식 해오신 분이 퇴원하자마자 백숙이 먹고 싶다고 해서 백숙집을 찾아가 식사를 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우리 가족 아빠 때문에 고생한 빛을 보는구나. 아빠가 이렇게 지난 날의 아집도 후회하고 성격도 밝게 바뀌었으니 엄마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입원까지는 안해도 되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도 나도, 아빠도 아주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다.



 5시간 정도를 달려 저녁이 다 될 무렵 병원에 도착했다.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1시간 정도 아빠를 진료했다. 그러고 나서 의사가 전달해준 의견에 엄마와 나 기대,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강원도로 다시 가서 밝아진 아빠와 함께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면 되겠구나 하는 상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었다.

 조울증이 유력하다. 자살을 한번 시도한 상태이고, 현재 조증이 온 상태이기 때문에 입원이 요구된다. 조현병 가능성도 있으니 염두에 두고 보겠다. 우울증이 아니라 조증이라고? 아빠의 그 적극적이고 쾌활한 상태가 사람이 죽을 고비를 겪고 바뀐 게 아니라 조증삽화를 보이는 상태였다고? 조증삽화는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갑자기 목돈을 쓰거나, 그런 게 아니었나? 그래 확실히 평소의 아빠랑은 비교도 안되게 사람이 붕 떠있긴 했지. 망연자실한 우리에게 의사는 1개월 정도 입원을 권했다. 


 입원을 해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자살 위험성도 그렇지만 다른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면밀히 관찰해서 병을 밝혀내야 했고, 약을 맞춰야 했다. 나도, 엄마도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 했고 아빠의 조증이 일어난 이상 무슨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통원치료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머뭇거리는 식구들에게 나는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이번에 병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입원을 진행하기로 하고 아빠를 설득 (이라기보다는 통보였다) 했다. 당연히 아빠는 거절했으나 딱 1개월만, 1개월만 고생하고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보내자는 말에 아빠는 체념하며 입원을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도 입원은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입원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까지도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입원 전에 일단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오라는 안내에 따라 인근 식당에서 온 식구가 다 모여서 밥을 먹었는데, 아빠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게 그때 드러났다. 입원 이야기가 나오자 아빠는 자신은 이제 병원에 들어가면 죽는 수밖에 없다. 저승에는 아주 특수한 비디오와 컴퓨터가 있어서 죽고 나면 거기에 내 죄업이 다 뜰 것이고 나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등의 망상에 가까운 소리를 (하지만 역시 불교신자구나 싶은) 아주 침착하게 떠들면서 이게 마지막 식사라느니, 자신이 죄 지은걸 어찌하겠느니 하며 침울하게 식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침착함 조차도 기묘할 정도로 비정상적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입원병동으로 아빠를 데려갔다. 엄마는 입원병동의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아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곳은 창문도 없는 폐쇄병동이었으니까. 아빠의 자살 가능성과 상태관찰을 고려해 초기에는 폐쇄병동 입원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을 보며 '니네 아빠가 저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다른 환자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입원을 한 것이고 결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아빠도 딱히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엄마 눈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가진 정신병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라고 엄마를 달래며 병원을 나왔다. 전문가를 믿어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그 암울한 입원 과정을 마무리하고 나는 큰 삼촌의 차를 타고 익산역으로 서울가는 기차를 타러 떠났다. 떠나기 전 엄마와 포옹을 했는데 엄마는 거기서 또 엉엉 울었다. 고생만 해서 어떡하냐. 이래놔서 미안하다. 나는 괜한 소리 하지 말라고 툴툴대고 차에 올랐다. 가는 길에 삼촌은 외할아버지를 수년간 간병했던 이야기를 해줬다. 너무 모든 것이 갑자기 나아질 기대는 하지 마라고...이제 아빠의 병은 우리 가족 생활의 상수이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오르니 갑자기 온갖 감정이 밀려왔다. 무섭고 두렵고 외롭고 슬펐다. 일이 터져서 수습하고 엄마를 달래야 할 때는 집중하지 못했던 내 안의 온갖 마음들이 다 밀려왔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집에 돌아와 혼자 잠자리에 누울때도 계속해서 불안해 했던 것 같다. 폐쇄병동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있을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로부터 내게 전달됐을 어떤 인자들을 생각했다. 그 인자들에게 비료가 될 내 성격의 결함을 생각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못했던 나에게 화도 났다. 돈이 많았다면 두 분을 억지로라도 도시로 끌어내 좀 더 여유있게 살 수 있게 할텐데. 아빠가 정말 미쳐서 강을 건너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 온갖 공포와 불안을 껴안고 그날 밤을 설쳤다. 


 지금 돌이켜봐도 아빠의 자살로부터 그 며칠간의 일들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정말 정말 큰 사고에 비하면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은 사건일 수 있지만...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일이 닥치니 나는 일을 수습하고 정리하고 맞서느라 어쩌면 조금 신이 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 내가 가족에게 드디어 내 쓸모를 입증할 때가 왔구나. 내가 예상한대로의 사건이 발생했구나. 이제는 내가 가족을 지켜야지. 하고 말이다.철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금방 극복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퇴원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괜찮아지고 오히려 전보다 더 우리 가족은 좋아질 거라고. 그러나 그 감정이 떠나자 사건이 그 짧은 시간동안 남긴 깊은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 뿌리는 우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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