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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Sep 04. 2020

04. 중환자실, 섬망.

2019.09.20-21의 일들.

 다음날 일어나 8시 경에 의사랑 회진면담을 했다. 별 다른 이상은 없고 주말-주초 사이에 퇴원이 가능하지만 아직 기도삽관을 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작은고모가 아침에 달려와 10시에 번갈아서 아빠 면회를 들어갔다.

 아빠는...그토록 싫어하고 절대 자신은 하지 않겠노라 되뇌었던 연명치료의 상징, 기도삽관 호흡기를 하고 있었다. SF 호러물에나 나올 법한 신체 개조 상태마냥 힘겹게 호흡을 하는 아빠를 보니, 왜 이리 원망스럽고 열이 받고 암담한지.

 한 1분을 멈춰 서서 아빠를 바라보다가. 다가가서 아빠를 불렀다. 아빠 왜그랬어. 아빠 많이 힘들지. 아빠 우리 같이 열심히 이겨내보자. 아빠 자식 믿고 이겨내보자. 응? 그런 말을 반복하고 곧 삽관도 빼고 병동도 옮길거야..하고  위로하고 나왔다. 아빠는 눈물이 그렁하고 삐쩍 곯은 얼굴로 나를 보며 고개만 끄덕이고. 내가 '나랑 약속하면 손 꼭 잡아' 라고 했더니 내 손을 꼭 잡아줬다. 기도삽관이 괴로운지 아빠는 계속 몸을 움찔거렸다. 고모는 면회를 들어가서 울고 나왔다. 마취가 풀린 상태에서 삽관상태는 정말 고통스러운 거라고, 1분 1초가 괴로울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고모와 죽집에 가서 3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아빠가 나와 엄마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얼마나 꽉 막힌 사람이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등등이 터져나왔다. 고모는 걱정되는 얼굴로 엄마랑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심지어는 내가 아빠에 대해 심한 말들을 뱉었는데도 (죽어버렸으면. 짜증난다) 고모는 이해해줬다. 서로 사는 게 바빴고 엄마도 나도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친척에게는 잘 안하니 고모도 몰랐을 것이다.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이모와 숙모가 왔고 걱정하는 두 분 앞에서 나는 또 아빠에 대한 격한 언사를 쏟아놓았다.  다들 한바탕 눈물 쏟는 와중에 막내고모도 뒤늦게 합류했다.


 두번째 아빠 면회는 고모들이랑 엄마만 다녀왔다. 고모들은 당연히 또 눈물바다가 되서 나왔는데...문제는 엄마가 면회를 들어갔을 때 발생했다. 기도삽관은 제거한 상태여서 의사 소통이 가능했는데.  아빠는 엄마에게 '자기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젠 돌아갈 수 없으니 늦었다고. 잘 살라는 식으로 자꾸 자포자기하는' 말을 했다는 거다. 

 엄마는 면회를 나와서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강하고 무덤덤했던 엄마의 내면의 기둥 하나가 무너져버린 느낌이었다. 내 무릎을 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엄마를 붙들고 가족과 나는 지금 아빠 많이 아픈 거라고. 아빠 말 다 믿을 필요 없다고. 엄마도 지금 그 일로 마음이 상처받고 심력이 쇠해서 저런 말에 무너진거라고. 엄마 마음 쓰지 말자고 달랬는데. 결국 나한테 하는 이야기기도 했다.



 계속 모텔에서 머무를 순 없단 생각에, 실신 직전의 엄마를 끌고 에어비앤비로 급하게 잡은 아파트 숙소에 왔다. 때맞춰 삼촌과 이모부도 왔다. 너무 화가 나서 하도 입술을 꾹 깨물었더니 입술이 너덜너덜해졌다.

 엄마는 자신이 35년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아빠가 몸도 멀쩡하다고 하나 그럼 아빠한테 벗어날 길이 없나 또 저대로 살아야 하나 하고 좌절했을 것이다. 아빠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게 그냥 자기 업이거니 하고 정말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아빠는 하고싶은대로만 하고 살았다. 재능 많고 똑똑하고 심지가 굳은 엄마에게는 이런 고난들을 주고. 멍청하고 답답한 아빠는 자신의 예민함 때문에 평생을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남을 괴롭히다가 이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니...속이 터졌다.
 

 물론 이해해볼만한 구석이 없진 않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싫어하는 것 투성이에 좋아하는 건 없고. 그렇게 곤두선 채로 62년을 보내니 신경이 닳아버렸겠지. 저 우울증도 아빠는 최근에 생긴 게 아닐 거다. 불교로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지.


 그렇게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인이랑 전화를 했는데 계속 참고 있던 눈물이 엉엉 나왔다. 애인에게는 이게 또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힘들 때 잘 이겨내야하는데, 이제 애인도 우울하던 심신을 좀 추스렸는데 이번엔 왜 내가 난리란 말인가. 


 엄마가 너무 곤히 자길래 옆에서 자면 괜히 깨울까봐 거실로 나와 외삼촌과 티비를 봤다. 외삼촌은 자신에게 큰 일이 닥칠때마다 그냥 별 다른 감정적 동요 없이,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잘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덤덤하게 수행해왔다고 했다. 그는 외가의 경조사 마스터인데 지금까지 장례도 참 많이 치뤘다. 볼때마다 저런 모습이 어른이겠지...했는데. 그 말이 내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됐다.

 그날 기질적으로 유쾌한 외가 식구들과 하루종일 떠들고 웃고 블랙코메디를 남발한 것이 엄마와 내 멘탈에 큰 도움이 됐다. 이씨 집안의 우울증이 내게도 남았다고 걱정하는 내게 삼촌과 이모는 그래도 너는 최씨 집안 사람이야. 라고 하는 게 왜 이리 위로가 되던지. 삼촌도 자러 가고. 나는 엄마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쇼파에서 잠을 청했다. 



 식구들과 감자탕집에서 아침을 거하게 먹고 카페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오전 면회는 나만 들어가기로 했다. 그의 소심한 성격상 식구들이 이 사건을 안다는 사실을 들으면 그걸로 또 자살시도를 할 양반이니. 식구들은 아빠의 실족으로 인한 부상으로만 아는 걸로 하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고 올라가 응급실 앞에서 비닐 옷과 마스크를 끼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었다. 이동훈 할 수 있다. 잘 이야기하자. 미워하지 말고. 아빠는 기도삽관도 제거했고 몸 상태도 괜찮아 보였지만 아직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30분 동안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는데 아빠는 부끄러움과 우울과 미안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계속 눈을 파르르 떨며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하려다 말았다. 아빠의 침묵이 너무나 걱정되고 미워서. 미운 마음은 꾹 누르고 아빠에게 이런저런 말을 했다.


아빠 나랑 열심히 이겨내보자. 우울증이건 귀신이건 나는 아빠랑 함께 할 준비가 됐어. 해보자고 나랑.  아빠 잘못 아니야. 뼈가 약한 사람이 넘어지면 잘 부러지는 것 처럼. 지금 마음의 힘이 너무너 약한거야. 그러니까 자책하지마. 괜찮아 아빠. 이런 건 지금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가 작은아빠처럼 아들이 죽길 했어. 아내가 떠나길 했어. 아빠는 스스로만 준비되면 돼. 식구들이 아빠를 사랑하고 아낀다구. 우린 모두 준비됐어. 내가 그래도 아빠 말 잘 들은 편이지 않아? 그럼 이제 내 말을 좀 들어줘 아빠.  

 그가 너무 의욕이 없어 힘이 풀렸지만 또 울적한 얼굴로 가면 엄마 심장이 덜컹할까봐 (엄마는 어제 이후로 계속 심장이 빠르게 뛴다) 또 심호흡하고 할수 있다 웃자 웃어를 되뇌며 식구들에게 그의 상태를 전했다. 


 자살의 위험성이 아직 있을 테니 입원이 필요하다. 작은아빠가 전주 쪽에 아는 병원이 있으니 입원을 준비하자. 의논을 한 뒤, 일을 좀 처리하고 나서 짬이 생겨 낮잠을 자러 잠시 숙소로 들어갔다. 혼자 있으니 또 왜이렇게 눈물이 핑핑 도나...하고 한시간 가량 설풋 잠이 들었다가 깼다.

 아빠가 일반병동을 옮기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해서,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차를 세우고 밥을 먹으려는데 병원에서 지금 일반병동에 옮긴다고 전화가왔고 나는 비를 맞으며 헐레벌떡 뛰어나가 택시를 타고 아빠가 입원한 곳으로 갔다. 자살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24시간 붙어있어야 한다는 걸 깜빡하고 밥 먹자고 헬렐레 했던 내가 등신이지 하면서. 근데 왜 이렇게 서러운지...


 다행히 아빠는 좋아보였고 누워있는 그에게 이런저런 말을 거니 곧잘 답을 했다. 아빠는 엄마를 보더니 내가 회복해볼게. 당신하고 동훈이 하라는 대로 치료 받아볼게. 당신 머슴처럼 살게. 당신 위해서...라는 말을 했다. 세상에. 내가 '잘 생각했어' 라고 하자. 엄마가 농담을 던졌다. 너도 아빠한테 소원 이야기해. 아빠가 너 맨날 때렸으니까 너도 아빠 때려.  

 그 농담을 듣고 아빠가 멋쩍게 웃자 갑자기 뭔가가 확 터져서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아빠 손을 꼭 잡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아이고 다행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누구에게?)하고.

 나는 그를 안 사랑하는데, 너무 미운데..근데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복잡한 감정들이 한순간에 터져버렸다.뒤 이어 외가식구들도 도착해, 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식구들을 숙소로 보낸 후, 아빠의 원주 병원 퇴원과 전주 병원 입원 절차를 알아보았다. 아직은 환자이니 보호자가 같이 있어야 해서 내가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무사히 다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밤 9시가 넘었을 무렵 갑자기 아빠가 몸을 세우더니 말했다. '누가 온다' 밖에는 어쩌다 돌아다니는 환자나 의료진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아빠가 좀 예민한가보다...하고 아빠를 달랬다.

 그런데 아빠는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공수부대가 온다. 나는 조사받으러 왔다. 너는 정보원이냐. 등등. 갑자기 두리번거리고, 불안해하고, 링겔을 뽑으려고 했다. 나에게 호통을 치다가 갑자기 후회하다가. 또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회복된 게 아니었나? 아까의 그 다짐은 뭐지? 아빠를 달래고, 걱정하고, 막막해하다가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너무 황당해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섬망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쇼크로 인해 뇌가 엉망진창이 된 상태인데, 치매랑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장애를 일으킨 거라고 나왔다. 특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응급실을 다녀온 직후에 섬망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일시적 장애니 괜찮아 진다는 얘기를 읽고 안심이 됐다.

 그러나 글은 글일 뿐...다음날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섬망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 아빠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남한테는 멀쩡하게 군다. 그런데 가족에게는...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다. 여기 독가스가 들어온다. 이 약은 안좋은 약이다. 의사 처방전을 가져와라. 너는 50점짜리 자식이다 (00대 나와서) 멍청한 새끼다. 심전도 패드도 빼고 자신의 심장이 계속 이상하게 뛴다고 난리를 피웠다.

 나중에는 약도 안먹을려고 해서 나와 온갖 실랑이를 했다. 힘을 쓰고 난리를 치고...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엉엉 울면서 아빠를 달랬는데. 나중엔 엄마까지 울면서 그야말로 신파극을 찍었다 (아이고 ㅋㅋ) 도대체 이걸 어찌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거 정말 섬망 맞아? 충격으로 치매 같은게 왔나? 우울증이 아니라...더 심각한 병이었나? 도대체 어떡하지? 그렇게 일반병동 2일차의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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