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분석한 사회비평서. 가성비 시대에 대한 비평서답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일본 비평가들은 참 이런 책을 잘 낸다.
1. 사람들이 빨리 감기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뉴스나 정보성 콘텐츠 뿐 아니라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도 그렇다. 한편에서는 기승전결이나 완급조절의 전개를 견디지 못한다. 유튜브에선 드라마나 영화를 요약정리해주는 콘텐츠가 대흥행하고 있다. 요컨대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에 있어 인내가 사라졌다. 이 책은 이런 현상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원인들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나름 정리해보자면 크게 세 가지다.
2. 첫째. 콘텐츠 산업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콘텐츠가 구독형태가 되고 생산방식이 바뀌면서 봐야 할 콘텐츠가 대규모로 늘어났다. 디스플레이도 다양화하며 더 이상 콘텐츠 감상이 단체성을 띄지 않게 됐다.
3. 둘째. 소비층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 변했다. 즐겨야 할 것은 늘어났는데 콘텐츠 주 소비층인 10대부터 40대의 삶의 여유는 특별히 늘지 않았다. 특히 1020에 있어서는 또래집단으로부터 이탈하면 안된다는 공포. 오답을 택해서는 안된다는 공포가 강하다.
4. 이 심리가 집단 내 주된 토픽인 콘텐츠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에서 뒤쳐지기 싫어 ‘요약본’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오답에 대한 공포는 모두가 인정한 메인스트림의 콘텐츠 위주로 소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동시에 비평에 대해 반감을 가진 형태(내가 택한 것을 공격하는 행위)로 구현된다.
5. 여유도 없고 스트레스는 높은 상황에서 상대적 박탈감은 높아지니 가성비 추구로 연결된다. 굳이 불쾌함을 견디지 않으려고 한다. 사이다 전개. 원래부터 강한 주인공을 찾는 것. 자극이 없고 정보값이 모호한 구간을 빨리감기로 넘기는 것은 같은 맥락에 있다. 여유없는 세상에서 불쾌함을 피하려는 것이다.
6. 셋째.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변화된 행태를 빠르게 눈치챈 제작자들이 콘텐츠의 수준을 낮춘다. 소비자에게 추측을 요구하지 않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전개. 과잉 상태의 대사량과 자막장치 등으로 소비자의 감상 수준을 더 악화시킨다.
7. 일본의 사회비평서적이라 한국의 세부사항에서는 다른 점들이 있다. 그러나 큰 축에서는 한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며 예전부터 생각했던 몇가지 사례들에 대해 얼개가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웹툰 댓글란에서 고구마 전개를 못 견디는 반응들. SNS광고에서조차 빨리 결론내는 것을 요청하는 최근의 흐름. 수많은 요약형 콘텐츠와 한줄평이 비평으로서 대접받는 요즘.
8. 아 좋았던 옛날이여 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다. 이러한 흐름이 사회에 여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책의 논지에는 정말 많이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미래냐 하면…나는 저자와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9. 기술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고 저자 말처럼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아마 이 형식 내에서 추구되는 진정성과 고품질이 있을텐데 아마도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다가 또 어느 시점부터는 레트로 유행하듯 진득한 감상이 뜰 수도 있고.
10. 냉정하게 말해 이 포맷은 사람들을 망쳐요~라고 앓는 소리 나온 것이 플라톤 이전부터다. 어찌보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때부터 인류는 계속 악화일로를 걸어온 셈이다. 구술이 문자로 대체되면서 말의 신성함을 잃었고. 필사가 인쇄로 대체되면서 글의 소중함이 사라지고 못배운 자들이 공격에 언어를 동원하고. 티비가 라디오를 대체하면서 시각정보에 압도당해 논리를 잃어버리고…반복되는 논리다. 물론 맞말의 비율은 어느정도 있지.
11. 매체가 수용자를 빚어내는 만큼이나 수용자도 매체를 빚어낸다. 올드미디어가 밀려난 만큼 뉴미디어가 새로운 방식을 창출한다. 비평이나 감상의 쇠퇴는 사실 틱톡 시대만의 일도 아니다. 감상의 쇠퇴가 곧 중요한 사회적 가치의 소실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뭐 지금이라고 해서 특별히 쓰레기 콘텐츠가 많냐 하면…비율로 따지면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12. 지난 세기의 교란이 작금의 목가인 것처럼 우리는 빨리감기가 결국 무엇으로 귀결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현상들은 그저 그 맥락을 최대한 이해해 볼 뿐이다.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