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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Nov 17. 2023

고객 우선은 만능이 아니다

멋과 실속 사이에서.

1) 1년 정도 같이 한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는 급성장 하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매우 건실하고 꾸준하게 실적을 쌓아가는 중이다. 이들의 주요 마케팅 수단 중 하나는 정기적인 샘플링과 프로모션인데, 여기에 두가지 장치를 두고 있다.


a. 공짜로 주지 않는다. 회원가입을 해야 하고, 배송비를 받는다.

b. 회수 가능한 쿠폰을 같이 발급한다. 이 쿠폰은 월 프로모션때 사용할 수 있다.


2) 이렇게 진행한 샘플링은 실제로 회수율과 이익 기여가 어떻게 되는지 면밀하게 측정된다. 이런 설계가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겠지만 의외로 이런 고려를 잘 안하는 경우도 많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남들도 하니까. 예전에 했으니까. 브랜드에 좋으니까...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고객 경험 극대화라는 개념에서 제품의 감도를 높이는데만 집중해 비용이 통제되지 않거나, 브랜딩/고객 경험 활동의 회수, 측정 방안에 대해서는 고민을 잘 안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도 많았다 그래서 이 원칙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 같다.


3) 관련해서 기획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니, 이 분이 생각하는 샘플링의 원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a. 브랜드와 기획자가 '이 제품은 써보면 반드시 재구매를 할 것이다'라는 강한 자신감을 가질 만큼 제품의 특성과 퀄리티가 명확해야 한다.


b. 감도높은 패키지보다는 경제적으로 구성이 최우선. 본품을 만드는 비용과 샘플 제작 비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객 경험이란 본품 사용에서 오는 것이다.


c. 하기로 했다면 회수 방안을 명확하게 설계하고, 1회분이 아니라 3회분 가량을 제공해야 한다. 누가 됐건 한번만 써서는 이 제품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4) 위에 말했듯 여러 이유에서 흔히들 우리 제품이 좋으면, 뿌린 만큼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체험단이나 샘플링을 운영하는 경우가 정말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 넓은 시장 속 부대끼는 수많은 브랜드 속 제품 소량을 공짜로 주는 것 가지고 강한 임팩트를 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건 바닷물에 맹물을 부어놓고 염도가 낮아지길 기다리는 꼴이 아닐까.


5) 대형 브랜드들의 샘플링이 활발하고, 그게 효과가 있는 이유는 해당 브랜드들에 대한 인지가 소비자들에게 높고, 그것을 어떤 형태건 회수 가능한 대규모의 유통채널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채널도 적고, 물량도 한정적인 스몰 브랜드들이 샘플링을 통해 고객 체험을 높이겠다는 건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 내지는 자기만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무료로 무언가를 주겠다면, 반드시 회수의 방안을 마련하거나 아주 약간이라도 비용을 리쿱할 수 있어야 한다. 꼭 매출 회수의 형태가 아니어도 좋다. 예를 들면 정말로 우리 브랜드 팬이나 얼리어답터들에게 리뷰를 받아보고 최종 개발에 반영하기 위한 과정이거나, 초반 후기를 모으기 위한 목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떤 식이든 브랜드에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결과물이 반드시 남아야 한다는 점이겠다. 아니면 배송비라도 받는게 낫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막상 공짜로 받으면 별 생각도 안든다. 내 돈 쓴게 있으면 더 꼼꼼하게 보고 기억하기 마련이다.


7)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멋있어 보이는 것' 과 '실속이 있는 것'의 괴리다. 이게 샘플링의 문제에서만 그럴까. 수많은 브랜드 활동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ATL,팝업 스토어,자체 미디어 등등...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고객 경험'과 '고객 우선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거기서 비용과 회수의 문제를 깊게 생각해보는 경우는 잘 없다. 요 근래의 불황이 이 점을 뼈저리게 이야기해준다. 화려함을 뽐내던 수많은 브랜드들의 끝은 무엇이었나?


8) 내 생각에 장사란 고객의 이익과 사업의 이익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최적점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소비자 마인드와 공급자 마인드 그 중간 어느 지점에 좋은 장사와 브랜드가 위치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글은 이렇게 쓰고 있지만 당장 일이 닥치면 그런 생각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


9) 고객의 이익만 생각하면 사실 성립이 안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격,패키지,본품 퀄리티, 홈페이지 구성,CS....그런 기준만으로는 도저히 이 요소들의 균형을 맞춰나갈 수 없다. 제품을 만드는 건 돈이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가지 원인에서 멋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브랜드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운 경우를 이 일을 하면서 너무 많이 봤고, 요즘도 심상치 않게 들려온다. 멋진 감도의 이미지, 화려한 패키지, 깊은 철학 뒤에 쌓여있는 적자는 과연 어디까지 합리화 될 수 있을까.


10) 물론 이 최적점을 잘 찾는 사람들은 멋과 실속을 다 챙기기도 한다. 그런 브랜드들이 가뭄에 콩나듯 있다고는 들었다. 또 둘이 항상 대치되는 개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성장의 과정에서는 둘을 양립 시키기 불가능한 경우가 수없이 많다. 멋은 공수가 들어가고 시간이 들어가고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사업자의 실속만 챙기다가는 사람들한테 역풍 맞기 십상이다.


11) 멋을 부리겠다면 시간은 좀 더 길게 바라보는 것이 맞다. 실속을 챙기겠다면 최대한 효율적인 / 측정 가능한 방법론을 찾아가는 게 맞다. 빨리 갈려고 하면서 멋있거나 진솔해지긴 어렵다. 느리게 가고 싶으면서 큰 이익을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이건, 본질적으로는 실속이 우선되어야 한다. 요즘은 계속 존속하며 좋은 제품을 쾌적한 구매경험 하에 제공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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