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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30. 2017

우리는 모두 꿈의 조각을 품고 있다

<20세기 이데올로기>를 읽고 쓰다

 반복해서 읊어봐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이 있죠.


  이데올로기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들리긴 하지만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닙니다. '이념'이라고도 하는 이 낯선 단어, 사전에는 '사회 집단에 있어서 사상,행동,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이나 신조의 체계'라고 나오네요. 좀 더 편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의식적/무의식적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해주는 생각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생경함과 별개로 인간의 삶에 무척이나 중요한 셈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설계한 체계에서 나고 자라 그 범위 내에서 세상을 보고 행동합니다. 이 체계에는 사회가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가 반영됩니다.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이들에게 사상과 발언의 자유가 있다는 믿음을 주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빼앗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심어주며, 자기 스스로 사는 자립형 인간을 중시하게 합니다.


  사람들의 선택을 통해 권력을 만들고, 이를 견제해아한다고 믿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유주의와 함께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6.10 항쟁과 작년의 촛불집회를 만들어냈죠. 이 사회의 메인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대다수는 사회 시설을 모두의 소유로 나눈다던가, 노동자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회제도 등에 낯설음을 느낍니다. 꼭 이런 큰 이야기가 아니어도 우리는 여러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를 마치 나쁜 것처럼 말하지만, 이건 그냥 중립적인 단어일 뿐입니다.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우린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죠. 또, 마치 국가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모두들 사회가 가르치는 이데올로기 외에도 자기 나름대로 형성하거나 학습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게 됩니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북한에서 자유주의자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윌리 톰슨의 <20세기 이데올로기>는 20세기에 각축을 벌인 이데올로기들을 다루고 있는 역사서입니다.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태동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두 이념에 대한 대항마로서 여러 사회주의자들과 마르크스,레닌을 통해 형성된 공산주의. 두 세계대전 사이에 태동해 나치를 통해 전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간 파시즘까지. 책은 이 4개의 이데올로기를 주요 플레이어로 봅니다. 그리고 이 사상들이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식으로 실행됐는지를 설명합니다. 해당 이데올로기들이 실제로 무엇을 이뤄냈고 어떤 한계를 가졌는지까지 말이죠.


  저자는 이 4가지 이데올로기가 서로 각축을 벌이면서 상호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풀어놓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 붕괴까지 상수로 자리잡은 공산주의는 다른 세 이데올로기의 경계심을 높였지만, 공산주의가 약속한 이상적인 사회가 공산주의 없이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혹은 혁명이라는 극심한 갈등상태를 겪지 않고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스스로 많은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를 테면 복지정책의 채택, 노동자 권익의 향상 등과 같이 말이죠. 그런가 하면 극단적인 대중 영합주의와 반공주의, 민족주의를 나타내는 파시즘은 '사회 구성원의 갱생'을 약속하며 보수주의와 결합하고 사회를 파괴합니다. 공산주의 내에서도 다른 세 이데올로기의 압박에 대응하여 다양한 운영 전략이 등장하고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놓습니다. <20세기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우리가 그냥 '사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떻게 세계를 바꿨는지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보여줍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는 '그 아무리 권위적인 사상이라 할지라도 해방을 약속'하는 것이니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밖예요.


  그런데, 이데올로기는 그냥 20세기의 일인 걸까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린 시절 그렸던 공상과학 속 모습보다는 1970년대의 한국인과 더 비슷하듯이, 우리는 20세기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살아갑니다. 공산주의라는 큰 축이 무너지며 자유주의에는 더 이상 대항마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21세기 들어 오히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한 파시즘이 보수주의,종교,이민자 혐오등과 결합해 2차대전 직후에는 상상도 못했을 형태로 세계 곳곳에서 발현됩니다. 항상 대안으로서 제시됐던 공산주의는 소련의 붕괴 이후 큰 대안을 찾지 못한 채 표류중이어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완전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난국에 처했습니다. 꼭 이런 국제정세뿐만이 아닙니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들로는 해석하기도,대응하기도 어려운 현상들이 일상에서도 계속 펼쳐집니다. 성인이라면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립할 방법이 없는 사회.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와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투표를 거치지 않은 권력이 더 쎈 사회. 사람들이 다 노동하지 않아도 생산이 가능해진 사회 등등...


  사회를 이루는 이데올로기들은 우리의 일상 대화 속에서, 행동 속에서 번뜩이며 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들-우리 몸을 포함해-의 대부분은 빅뱅 이후 만들어진 별이 폭발하며 생성됐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별의 조각 하나씩을 몸에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죠. 근데 우리 몸이 별의 잔해라면, 우리의 생각은 아마 이 20세기가 꾸었던 꿈의 조각들로 이뤄진 건 아닐까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이데올로기 없이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면, <20세기 이데올로기>와 함께 우리 안, 꿈의 조각들이 형성하는 창문이 어떻게 세계를 바꿔왔는지 알아보는 건 꽤 흥미롭고 의미있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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