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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30. 2017

재앙을 이해하려는 노력

<컬럼바인>을 읽고 쓰다

우리는 재앙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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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에 의한 무차별 총기난사로 13명이 사망합니다. 범인은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라는 두 명의 학생이었고, 테러를 저지른 후 현장에서 자살합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이들의 범행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난무합니다. 마릴린 맨슨과 NIN 같은 과격한 락음악에 빠진 너드였다. 게임중독자였다. 운동부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왕따였다 등등...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미국 내에서도 원인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고 다른 나라에도 끼쳤던 영향이 컸던 사건입니다. 정작 원인은 초기 언론들의 자극적 보도와는 전혀 달랐고,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이 사건을 소재로 미국 내 총기규제에 대해 비판한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작품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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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은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10년동안 취재하여 완성한 탐사보도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콜럼바인 사건에 대해 '범인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 라던가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와 같은 한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책은 사건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다 그려냅니다. 증언에 기초한 사건 현장의 묘사. 피해자들의 사건 전 후의 삶과 재활. 두 범인의 사건 전 삶과 범행의 원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부,언론,시민,학교,교회 등 주요 사회 구성원들의 사건에 대한 대응과 결과 등 그야말로 모든 요소를 다 담아냅니다. 때문에 사건 현장을 묘사하고 피해자 상태를 이야기하는 전반부는 장소와 분위기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기록된 풍경화를 보는 기분이지만 수사관들과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라 범인의 범행 동기와 캐릭터를 찾아가고, 정부와 언론,교회가 저지른 실수와 피해자들의 삶의 변화를 기록한 후반부는 그 어느 추리소설 못지 않은 구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 책은 미국 추리작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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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성 덕에, <콜럼바인>은 풍부한 내용만큼이나 우리에게 던져주는 생각의 지점도 많습니다. 콜럼바인 사건을 두고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취재와 루머에 근거한 보도가 난무했던 초기 보도를 보고 있자면 재앙이 일어났을때 이를 둘러싼 언론보도는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사건 현장 피해자들이 충격에 의해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왜곡된 증언을 했었다는 사실을 읽을 때는 인터넷의 폭로전이나 냉철한 수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죠. 피해자들의 범행 원인을 추측하는 파트를 보고 있을때는 청소년기의 치명적인 폭력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교육 방법에 대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이 모든 주제를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 탐사보도를 통해 깊이있게 풀어내는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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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고, 우리는 너무나 편견에 가득차 한 생을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들의 세계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재앙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편견에 기초하여 재앙을 판단하고는 자신이 다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앙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소수의 이들은 재앙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 원인을 탐구하고, 재앙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과 함께 비를 맞는 길을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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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가 재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콜럼바인>과 같은 성과물을 보고 있자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장기간의 노력이 투여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찰자의 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이 책을 보면 그런 희망이 생기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관찰자의 냉철함을 유지하면서, 관찰을 업으로 삼는 이들-예를 들면 탐사보도 언론,기자-들을 지원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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