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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Oct 28. 2017

<힐빌리의 노래>를 읽고 쓰다

남을 이해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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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의 편집장이었던 안수찬 기자는 과거 빈곤 청년의 실상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외환위기로 공중분해된 가정에서 자라난 청년들. 공단에서 먹고자는 청년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청년들, 반지하에 살 돈을 겨우 마련하고 비정규직으로 경력의 대부분을 채우는 모두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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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들에게 민주주의, 진보, 정치 어쩌고 하는 것은 와닿지 않는 하늘 위의 이야기일 뿐이고 빈곤은 자신의 노력 문제로 치환됩니다. 안수찬 기자는 이들의 빈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정치는 현장에서 구체적인 인간들이 이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며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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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는 정확히 안수찬 기자의 문제의식에 닿아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과거 제조업으로 유명했지만 공업 몰락으로 인해 저소득 지역이 된 미국의 오대호 인근 지역 '러스트벨트'의 저소득 백인 가정에서 자란 J.D 반스라는 인물의 자서전입니다. 이 지역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었죠. 그는 몇가지 계기를 통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업가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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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한 자서전이라면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열심히 노오오력을 해서 성공했다!'라는 사이비 자기계발 서적의 도식을 따라갔을 것이고 우리가 이 책을 읽어볼 일도 없었을 겁니다. .  책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저자가 가진 복잡한 시각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요. 친구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연애나 과거를 그리워하다가, 화도 냈다가, 체념하기도 하는 걸 듣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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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음과 같은 원인들에서 나옵니다. 하나는 본인의 자서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생생한 가난의 현장과 그 악영향을 증언한다는 것. 두번째는 스스로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난의 원인과 현상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대하고자 노력하며, 가난의 해결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 세번째는 앞서 두가지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인연과 자신의 노력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인해 J.D 반스는  가난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으면서도 가난한 이들의 문화의 문제로도 돌리는 복잡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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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보여주는 가난의 풍경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동기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기에는 많은 문화적 장벽이 세워져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가난에 의해 신뢰를 잃은지 오래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문화를 만들고, 우리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그렇다면 무너진 세계 속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노력하면 앞으로 더 나아질 거야' 라고 말하거나 사회를 파괴하는 극우적 지향을 가진 이에게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건 도대체 무슨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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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내버려둔 이들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선택을 합니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범죄나 자살로 나타나기도 하고, 집단의 차원에서는 태극기 집회와 같은 극우집회나 테러행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세상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 와중에도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이들은 한국에도 많으나, 사람들 대다수는 그런 이야기들을 펼쳐보이면 '지금 이들을 옹호하려는 거냐' 라거나 '그래도 나라면 그러지 않는다' 라고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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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게 정말로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싫어하고 증오하는 이들의 근원을 직시하는 일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지. <힐빌리의 노래>는 그 긴 과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험담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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