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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Jan 05. 2018

평등은 완전한 파괴 위에서 온다.

발터 샤이델, <불평등의 역사>

 새해입니다. 읽은 책은 쌓여만 가는데 이래저래 일이 많아 한동안 리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2017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 - 읽고 있느라 2018년으로 넘어온 책을 제외하자면-은 발터 샤이델이 쓴 <불평등의 역사>입니다. 800쪽에 육박하는 거대한 두께를 가진 이 책은 불평등이 인류 역사 속에서 어느 시점에 해소됐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저를 포함해 세상이 바뀌었다, 혹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잔인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불평등은 파괴를 담보로 한다는 것.


 그냥 파괴가 아니라, 4가지의 재앙이 있을 때만 가능했다는 겁니다.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국가 총력전. 러시아,중국에서 일어난 혁명. 흑사병과 같은 궤멸적 전염병. 국가의 붕괴 등과 같이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이들의 목숨이 사라지는 재앙을 통해서만 빈부격차가 해소되었음을 저자는 다양한 통계와 자료들을 활용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발터 샤이델은 이 재앙을 '평준화의 4기사'라고 칭합니다.


 세계대전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쟁은 국가 전체의 자원 투입을 요구했고, 정부는 일반 대다수의 전쟁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불평등 해소안과 부유층에 대한 압박을 진행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전쟁을 통해 진행된 인구의 감소도 불평등의 해소에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진행되었던 불평등의 해소가 20세기 전반을 결정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국가 체제를 근간에서 바꾸고 부의 몰수와 분배, 대규모 인구의 사망과 이동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합니다. 흑사병 또한 인구 감소를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가 체제 붕괴는 착취 계층을 신규 지배층으로 교체하거나 착취 시스템을 축출하고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각종 파괴와 사망을 통해 불평등 해소에 기여합니다. 요컨대 기존 세계의 거의 완전한 파괴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 1 조건이라는 게 발터 샤이델이 말하는 역사의 진실입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진실에 대해서 대다수가 생각할 만한 다양한 반박들은 저자에 의해서 전부 부정당합니다. 그래도 혹시 전인미답의 길이 있다면, 거기서 불평등의 평화적 해소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마지막 바람에 대해서는 발터 샤이델은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만일 역사가 길잡이로 삼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면 
평화적인 정책 개혁은 눈앞의 산재된 도전 과제를 풀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더 커다란 경제적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모두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것이 항상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탄생했음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소원을 빌 때는 조심하시길"


  발터 샤이델의 연구 결과를 보고 나서 저는 정치의 역할에 대해 생각 했습니다. 발터 샤이델은 재앙 이후 불평등을 해소한 정책적인 움직임이 마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실제 역사에서 적어도 근대 이후에 재앙을 예견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던 흐름들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공황때 미국이 뉴딜을 실행할 수 있었고, 2차대전 후에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복지국가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정치란 비단 평화적 해결 뿐 아니라, 재앙이 닥친 상황에서도 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세계관을 제안하고 이를 북돋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역사적 사고가 중요하겠지요.


 객관적인 데이터가 우리의 믿음과 다른 현실을 보여줄 때, 우리는 과학적 사고에 따라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현실은 지금까지 이러했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 맞는 방법일까요. 아니면 현실의 엄중함을 받아들여 희망을 수정하는 것이 맞을까요. 저는 아직까지도 전자가 인간으로서 더 나은 방향이라고 믿지만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는 광신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걱정 또한 버릴 수가 없습니다. 누적된 현실의 엄중함을 경시하지 않되, 현실이라는 이유로 이상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재미없는 답변이 아마 우리가 평생 견지해야 할 태도이겠지요. 2018년 한 해도 현실과 바람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나가야 할 우리들의 새해 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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