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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y 08. 2018

북한인이라는 이름의 외국인

수키 김 <평양의 영어선생님>

 
얼마 전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이 뭉클해졌지요. 근데 평화를 기대하는 한편, 그간의 북한을 둘러싼 분위기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저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지난 11년간 퍼진 북한의 암울한 실상은 분명 일부분 왜곡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분명 일말의 진실 또한 있겠죠. 그 진실은 북한은 악마라는 묘사와, 북한은 나름 살만한 사회라고 하는 태만한 묘사 사이에 있을 거예요.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석상 모습 하나로 그 모든 이야기가 다 거짓이고, 집요한 음해였다고만 하기엔 어렵단 생각이 들었어요.  또, 통일을 그저 또 하나의 경제적 식민지로서, 혹은  '한민족'이라는 단어로서 상상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거부감을 느꼈어요.

연합뉴스 


 제 나이대인 30대부터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민족을 이야기하고, 통일의 유용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그런 바람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고 해서 이제 와서 다시 또 하나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50년동안 너무나 다른 사회 속에서 살아왔는데, 과연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게 합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을까. 남한 내의 이민자, 난민, 소수자, 외국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사회. 탈북자 조차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는 이 사회가 과연 북한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오늘 소개드릴 책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 해줄 만한 책입니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이라니. 툭하면 미제 타도를 외치는 북한의 심장부에 어떻게 영어 선생님이 있었을까요? 작가인 수키 김은 평양 과학기술대학의 외국인 교사 모집에 지원, 북한의 대학생들을 실제로 가르치고 와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겪은 학생들하고의 의사소통과 에피소드, 평양의 (한정된) 풍경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의 암울한 시나리오 하나가 자꾸 떠오릅니다.  '통일은 불가능하며, 민족이란 허상이다'-라는 시나리오 말이죠.

AP Photo/David Guttenfelder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북한에서도 상류층 계급에 속해있는 자들입니다. 근데 외부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개인을 말살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그 엘리트들 조차 예상 밖의 순간에 뜻밖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묘사에 따르면 그들은 예의 바르고,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으며, 인간적 열정들을 나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체제가 길러낸 특성으로 인해 그들의 열의와 희노애락은 펼쳐진 적 없이 꺾여 있습니다.


 자유로운 이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간단한 회화 예문조차 이해할 수 없고, 자기 뜻대로 삶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적이 없으니 자신의 요구를 주장하고 실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어떤 질문이 떠오르더라도 그게 혹시 금기를 위반하는 건 아닐까 눈치보고 두려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끊임없이 좌절을 느끼고, 학생들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단서를 주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리지만, 그 일이 얼마나 학생들을 위험하게 할 지를 생각하며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AP Photo/David Guttenfelder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평양 학생들의 세계관과 인식을 보며, 저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후반부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그 영화가 '체제와 이념은 인간성이나 감정 따위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 해도, 우리의 근본은 자신이 자란 사회의 이념들에 의해 결정되고, 달라집니다. 작가는 계속해서 학생들 안의 인간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슬픈 감동을 주지만 오히려 그 순간 우리는 인간의 감정 따윈 순식간에 잠재우는, 개개인에게 내재된 완벽한 통제를 목격합니다. 아니,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감정조차도 이념을 떠나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물론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AP Photo/David Guttenfelder

 우리가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한민족인 북한과도 가능할 거라고 믿는 건 실상 이 세계 대다수가 같은 이데올로기에서 자라왔기 때문일 거예요. 개인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권리가 있다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념 하에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이념이라고 생각 조차 안해본 이 이데올로기들을 벗어난 외국인을 우리는 만나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차 북한의 일반 시민들과 교류할 때가 온다면 그때가 진정한 '외국인'을 만나는 순간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외국인과 우리를 '민족'의 개념으로 사고하는 게 좋은 방법일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 사회 내의 외부자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가 평화의 시대가 왔을 때, '같은 말을 쓰는 외국인'과 교류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그 외국인으로서의 북한의 얼굴을 <평양의 영어 선생님>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글에 실린 북한의 사진들은 허핑턴포스트 '당신이 본 적 없는 지금 북한 사진 50' 기사에서 가져왔으며, 원 저작자는 AP Photo/David Guttenfelder 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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