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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Apr 30. 2018

생각에 질식할 것 같은 이들을 위해

<하마터면 깨달을 뻔>

저는 생각이 몹시 많은 편입니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걸핏하면 파국적 사고로 치닫곤 합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 미래 현재 과거를 가리지 않는 고민들이 더더욱 심해져, 몇년 전부터 제 새해목표는 항상 '쓸데없는 생각을 줄이자'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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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생각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유명한 구절이 말해주듯 우리의 생각은 무언가를 하고자 해도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안해야지 하면 생각은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지 하면 계속해서 불안해지는 게 생각의 속성입니다. 근데,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이 이야기하듯 생각이 개조 가능하고, 우리 자신에 속한 거라면. 우리 마음대로 생각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마치 우리가 손을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는 것 처럼 말이죠. 근데 생각이나 감정들은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까요?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애시당초 그런 생각에 시달리는 '나 자신'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그건 우리 마음대로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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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나이바우어가 쓴 <하마터면 깨달을 뻔>은 좌뇌의 기능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자아와 현실인식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주제들을 던지는 책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정리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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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좌뇌란 본래 패턴을 인식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이 영역은 인과법칙을 찾고 개연성을 부여하며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죠. 근데 이 기능은 분명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능이긴 하지만(개연성을 찾지 못한 인류의 조상들은 아마 풀 숲의 맹수들에게 잡아먹혔겠죠) 지금처럼 인류의 기본 생존 자체가 많이 해결된 시대에는 다른 문제가 됩니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좌뇌가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패턴을 찾고, 자아 스스로도 분열하고 라벨링을 붙이고 생각의 연쇄에 빠지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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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가 문제냐고요? 저처럼 그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실재에 대한 생각'과 '실재'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나라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실존하는 내 자신도 구분하기 어렵죠. 이런 생각의 생각만이 세상을 인식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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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을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내 '추정'으로 괴로워하고. 내 마음대로 변하지 않는 '자아' 때문에 우울해합니다. 그럼 좌뇌라는 패턴 인식기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조절하면 안될까요? 책에 따르면, 이 장치의 난점은 투명한 존재라는 겁니다.  패턴 인식 자체가 좌뇌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기능이기 때문에 '알아낸다'는 패턴 인식 발상으로는 생각에 생각만 일어나는 악순환이 발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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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제시하느 이런 상황을 해소하는 방법들은 다양합니다. 패턴인식기의 감도를 낮추는 훈련들을 계속 해나가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의 움직임,호흡에 집중하는 것.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넌센스 (선사들의 화두 같은)에 몰입하는 방법. 착시효과들을 보면서 좌뇌가 일으키는 착각들을 직시하는 방법. 오늘의 불평불만을 다시 되새겨 보는 방법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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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도 결국 우리는 또 분별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겠지만, 한번이라도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시는 분별하는 마음의 '하인'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크리스 나이바우어는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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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들은 뇌의 인지기능이라는 자료를 물고 들어올 뿐, 매우 불교적입니다. 자아에 대한 개념. 생각과 실재에 대한 개념들은 불교 교리랑 다르질 않아요.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는 이 이야기들이 그저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생각과 자아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던 분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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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자 왈.  이 모든 것의 목표가 '깨달음을 얻기' '자아를 한단계 높은 레벨로 올리기' 따위가 아니라고, 그럴 수 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애시당초 개발할 '마음'이란 없는 것인데 무엇을 개발하냐는 것이죠. 이런 책을 두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게 너무 넌센스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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