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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타기인생 May 22. 2018

97년 이후 우리는

안은별 <IMF 키즈의 생애>

80년대에 태어나  지금 30대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97년 당시를 대부분 기억하실 거예요. 어린 시절에는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 저도 당시에 tv로 '단군 이래 최대 환란'이라는 말이 나오고, 친구 아빠가 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앞으로 먹고 살기 더 어려워 질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제 개인의 삶은 부모님의 해고나 사업 실패 등과 같은 엄청난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imf를 기점으로 해서 간접적으로 제 아버지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으니 저 또한 imf의 영향에서 자유롭진 않았지요. 나중에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며 그 시절이 어떤 시절이었나 되돌아보면, 다들 똑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가 바뀌었다고요.

ⓒ중앙일보 

imf를 통한 한국사회 구조조정의 결과로 그나마도 없던 사회의 안전망과, 직장의 안정적인 고용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적자생존의 논리가 직장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선진 경영, 합리적 경영, 자기계발 등의 이름으로 퍼지게 됩니다. 이런 사회구조와 주류 논리의 변동에 따라 사람들은 경제적 생존의 논리를 최 우선시하게 됩니다. 대략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하지만, 사실 그 시절에 10대를 보낸 사람들은 한국사회가 imf 이전과 이후로 바뀐다는 것을 체감하기 어려워요.


왜냐면 imf 이전엔 너무 어려서 모르고. imf 이후의 사회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어서 뭐가 다른지 알수가 없었죠. 일자리는 원래 부족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건 당연하고, 사람들은 원래 몰염치하고, 국가에는 별로 기대할 게 없고, 원래 삶은 이렇게 항상 불안정한 것이고, 경쟁은 당연하고...사회는 원래 이런게 아니었나?  그래서 그 전에 한국사회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모습은 정말 바람직한 모습이었는지 아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궁금하기도 합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은별의 <IMF 키즈의 생애>는 저와 같이 97년 외환위기 당시 10대를 보냈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모음집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경험담은 제 세대의 경험담이기도 해서, 매우 공감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말할수 조차 없는 이들은 인터뷰 대상으로 섭외할 수 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이 과연 'IMF 키즈'를 대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저는 이 인터뷰가 한국사회가 imf 이후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와 구멍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자의 자각처럼 인터뷰이들은 비교적 좋은 교육수준을 갖추고, 자신의 경험을 합리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이런 이들의 삶 조차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하고 우리는 전체 사회상을 유추해보게 되죠.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울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일자리가 조금 더 안정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좀만 더 먹고사는 문제에 동물적으로 몰두하지 않았다면. 의료비가 조금 더 쌌다면. 학비가 무료였다면...물론 세상의 고통이라는 건 꼭 사회만이 원인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는, 사회가 부족해서 겪게 되는 고통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예전에 어느 인문학 강좌를 들을 때, 당시 교수님께서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사회 구조가 이렇기 때문에 개인도 이렇다고 말하는 일
혹은 모든 고통의 원인을 사회구조적 이유에서만 찾는 것은 사이비 사회학이다.
사회학은 결국 구체적이고 이름을 지닌 한 인간을
발견하고 탐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름과 욕구와 희망을 가지고 희노애락을 느끼는 한 개인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만 사회가 어떻게 한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있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였겠죠. 저는 <IMF 키즈의 생애>는 그 교수님이 말했던 '사회학'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인터뷰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학을 우리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그래서 같은 맥락과 사회 속에 있는 각기 다른 개인들을 찾아낼수록. 우리가 좀 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늘어나지 않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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