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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 shot a story

약속과 칭찬

Kentmere100_2309_011

by 이동욱
묵묵히 변함없이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먹긴 쉬웠으나, 실행에 옮기려니 생각보다 훨씬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능하겠구나 싶어 초조해졌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니 주말에 필름 1 롤 — 12컷 — 을 꼭 촬영해야 한다. 시작부터 난도가 높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12컷은 굉장히 적은 수였는데, 필름으로 촬영할 때의 12컷은 그 볼륨감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12장의 필름을 마음에 꼭 드는 순간으로 꽉 채우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해냈을 때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꽤 멋진 작업이다. 그렇게 정성껏 찍은 필름을 월요일 퇴근길에 을지로 3가 망우삼림에 들러 현상, 스캔을 맡긴다.


네거티브 필름은 빠르면 하루 만에 나오지만, 작업이 많을 때는 이틀이 걸릴 때도 있는 것 같다. 스캔된 사진이 넘어오면, 그 사진을 중심으로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토막글을 쓴다.


며칠간 고여 있던 생각이 터져 나와 글이 술술 써질 때도 있지만, 아무리 좋은 사진일지라도 충분한 생각이 쌓이지 않았을 때는 한 글자를 적기도 어렵다. 그럴 땐 80, 90년대 음악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잘게 흩어졌던 생각들을 모아 브런치에 올릴 한 편의 글로 엮는다. 그래도 마무리는 움직이는 지하철이 아니라 정지된 테이블 위에서 단정하게 하고 싶다. 아이들이 잠든 후, 거실의 가족 테이블에 앉아 부족한 생각을 펼쳐놓는다.


이렇게 미완의 문장을 이렇게 넓은 공간에 풀어도 되는 걸까 —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채, 조용히 발행 버튼을 누른다.


하루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아득한 와중에, 약속을 지킨 나를 칭찬한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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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selblad, Planar CB 80mm F2.8 T*

HARMAN Kentmere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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