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via50_0501_009
무겁고 어두운 생각이
머릿속에 꽃을 피우고 온몸을 휘감으려 할 때면,
그냥 밖에 나와 무작정 움직이고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일상의 리듬에서 조금 벗어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털어버리고
한결 산뜻해질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초고층 건물과
그 아래 떠 있는 호화로운 요트들을 바라보며
어딘가 현실 세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찍을 계획도 없었고,
찍을 필요도 없는 컷이었는데
이날도 속상한 마음을 훌훌 날려버리기 위해
차에서 삼각대를 꺼내 노출을 측정하고
타이머를 맞춘 뒤
열일곱 초 정도 셔터를 열어 두었던 것 같다.
타이머가 있음에도
일부터 십칠까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숫자 하나하나에 상념을 묻어
뒤로 날려보낸다.
오늘, 리듬에서 벗어나
오랜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던 것처럼,
그날의 나는 옆에 있던 카메라에게
불쑥 말을 걸었고
이 사진은 과묵한 그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
Hasselblad, Planar CB 80mm F2.8 T*
Velvia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