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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욱 Nov 16. 2016

일본 교토  은각사∙銀閣寺 / 가을∙秋

Ginkakuji of Kyoto, Japan / Autumn

16.11.08


잘 보존된 이끼. 그 안에 담겨있는 그들의 정서와 문화


일본에서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는데 브런치 페이지를 열어놓고 이런저런 문장들을 썼다 지웠다 계속 반복하고 있다. 가서 보고 느낀 건 많은데 글로 풀어낼 솜씨가 부족하다 보니 그렇다. 그리고 이럴 때 쓰는 글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교토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이라고 하면 청수사(키요미즈데라), 금각사(킨카쿠지) 그리고 은각사(긴카쿠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운 좋게 세 곳을 전부 다 방문할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오래 남는 건 가장 크지도, 가장 화려하지도 않은 은각사였다. 지역 일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은각사는 일본 전통 정원을 통해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가치관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고유의 정서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조용히 눈 앞에 펼쳐지는 그 광경이 보는 이의 가슴속에 크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비가 내리는 관음전 은각 일원


은각사를 건축한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운 금각사의 화려한 건축물을 닮은 건축물을 짓고 싶었다. 외관을 은으로 씌울 계획을 세웠지만, 건물 전체를 씌울 만큼의 은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교토에는 오닌의 난이 일어나 물자 조달이 어려워지고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건축물에 옻칠만 칠한 채 사망했다고 한다. 건축물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하여 그가 원했던 할아버지만큼 화려한 건축물을 짓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때 미완성으로 남았기에 지금 후세의 사람들에게 과장되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은각사가 금각사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은색 건축물이었다면 그 의미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은각사담 사이로 보이는 대나무 숲


중문 앞의 가레산스이 정원



정성스럽게 손질한 정원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은각사담을 지나 입구를 통과해 경내에 들어가니 작은 가레산스이 정원이 눈 앞에 펼쳐졌다. 가레산스이는 못이나 농업용수 등의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에 의해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 양식으로 선종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선(禅)」 자체는 형태도 없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선승들은 자신들이 터득한 경지를 상징화하여 형태로 바꾸어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힘썼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선의 정원 '가레산스이' 다.  


본당 앞의 코게츠다이, 후지산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빗방울이 제법 컸는데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래가 신기했다


본당 앞의 긴샤단, 파도를 표현했다고 한다


나흘간의 일본 여행 일정 중에 교토에 방문한 이틀째 되는 날 때맞춰 비가 내린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산을 쓰고 이동하는 게 불편하다며 투덜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이 비가 하루 종일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본당 옆 토구도 앞의 정원 풍경. 비가 와서 더욱 운치가 있었다


지면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더욱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전망대에 올라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오차노이(お茶の井). 요시마사가 차를 끓일 때 사용했던 물


본당을 지나면 관람로를 따라 전망대로 올라가게 된다. 5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는데 이곳에서 은각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일본의 전통 건축물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숲과 나무가 갖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래에서 바라보던 사찰 내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단풍이 들어 참 아름다웠다.



화려하게 물든 단풍 너머로 관음전과 본당의 지붕이 보인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단풍이 절정을 이룰 것 같았다

 

정상 부근에서 내려다본 은각사 전경


주변의 숲과 함께 바라볼 때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관음전 은각


은각사를 둘러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다름 아닌 싱그러운 이끼였다. 담장 위 기와에서부터 정원 이곳저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잘 자란 이끼를 바라보며 부럽다는 생각에 빠졌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끼가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가 생각한 이끼는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끼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생장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함부로 밟거나 걷어내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 지나가는 모습이 눈 앞에 떠올랐다. 스스로 그 자리에 있는 자연에 대한 존중을 담은 가치관. 그리고 내가 본 것을 다른 사람도 함께 볼 수 있게 해주는 타인에 대한 배려. 시간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한 소중함을 인정하는 문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10년 전 일본에 왔을 때는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우리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했다.  


담장 위 기와에 자리잡은 이끼


이끼를 사용해 만든 정원


축적된 시간이 느껴지는 장관이었다



교토에는 은각사 이외에도 아름다운 문화재가 정말 많고 또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역사와 문화를 어느 순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인천 장수동의 은행나무가 떠오른다. 수령이 800년이 넘은 그 거대한 은행나무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생기고 멋진 은행나무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난 여름에 방문했을 때, 안타깝게도 그 주변은 불법 노점과 취객들의 고성방가 때문에 더 이상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흉물스러운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안타까웠다. 인천이 교토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전국에 이런 사례는 너무나도 많을 것이다. 우린 발전과 개발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그런 가능성들을 너무 쉽게 덮어 버리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국내에 남아있는 문화유산들이 더 잘 보존되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가 계속 발전할 수 있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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