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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욱 Dec 06. 2016

스페인 세고비아 / 여름∙夏

Spain, Segovia / Summer

2015.08.29


노래 한곡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걸 보면 나도 참 그렇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미 지나간 해외여행 사진을 다시 끄집어내어 글을 쓰는 건 정말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왠지 발전이 없고 신선하지 못한 느낌, 그리고 과거의 영광만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는 비겁한 어른 같아서.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역시 회사원은 퇴근길을 조심해야 한다. 우연히 듣게 된 정승환의 노래가 문제였다.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노래도 아니건만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들었던 한곡의 노래가 감정선을 툭 하고 건드리면서 갑자기 스페인의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엄청 그리워졌다. 결국에는 집에 와서 작년 여름휴가 라이트룸 카탈로그를 열어 그 날의 사진들을 열어봤다. 행복한 추억이 가득이다.


그동안 스무 편 남짓의 길고 짧은 여행에 대한 글을 썼지만 그 안에 세밀한 정보는 많이 담겨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쭉 그런 글을 쓸 예정이다. 누군가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꼼꼼하게 기록을 하며 했던 여행도 아니었고, 그런 여행 정보는 나보다 훨씬 더 역량 있는 분들이 감사하게도 블로그, 여행잡지, 가이드북등 여러 가지 형태로 이미 잘 정리해 주고 계신다.


그냥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본 곳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나 여행지 위시리스트에 그 장소가 한 줄 추가되는 정도면 충분하다. 좋은 날씨, 이국적인 분위기, 역사적인 건축물,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볼 수 있길 바란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졌다고 하면 이미 이 부족한 글쓰기의 목표는 200% 초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스페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름 모를 나무들이었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렸을 때 특별히 다른 공기를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하긴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국적인 가로수와 색다른 모양의 나뭇잎이 내가 지금 한국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에 와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마드리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이동하니 세고비아에 갈 수 있었다. 첫날 일정을 세고비아로 정한 건 마을이 그렇게 크지 않고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어 본격적인 스페인 여행에 앞서 예행연습으로 적당할 것 같아서였다.


세고비아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수도교를 보기 위해 시가지 쪽을 향해 들어가다 보니 여러 가지 건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건물에서 느껴지는 건 '검소함'과 '솔직함'이었다. 건물에 화려한 색이나 치장이 없었지만 절제된 색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패턴을 통해 요란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실제로 건물 장식에 사용된 패턴이나 색 배합을 보면 절대 우연히 나왔다고 볼 수 없는 세련된 것들이 많다. 이런 뛰어난 미적 감각이 이 나라에선 그리 특별한 건 아니라는 듯 여기저기에서 쉽게 발견되는 신기한 경험은 여행이 끝나는 바르셀로나까지 쭉 이어지다 결국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세고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산 미안 성당



산 마르틴 성당


산 마르틴 성당의 회랑 기둥. 아치와 기둥장식이 예쁘다




로마 수도교, 확고한 의지가 담긴 유산


수도교 아래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건축물인지 알 수 있다


광장에 도착해 수도교를 처음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사람이 가진 잠재력이란 시간을 초월해 무한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교량 길이 728m, 120개의 기둥, 167개의 아치, 최고 높이 28m, 수로의 총길이는 16km.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시멘트와 같은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치형으로 쌓아 올린 돌들이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들 정도였다. 그 당시 수도교를 건설하던 사람들은 먼 미래의 후손들이 이 수도교를 보러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것이란 사실을 알았을까. 그 후손들은 지은 지 10년도 되지 않아 여기저기 고장이 나는 닭장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198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석조 건축물을 보면서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빠르게 교차했다.  


수도교 옆으로는 새끼 돼지를 통채로 요리하는 '코치니요 아사도' 로 유명한 '메종 드 칸디도' 가 보인다


햇살을 받아 더 아름다운 수도교의 아치


아래서 올려다본 수도교. 사진으로는 그 스케일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



El Fogon Sefardi, 우연히 완벽한



아무래도 포털사이트와 SNS가 문제의 원인이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경험을 공유하고 그 정보를 쉽게 검색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결국 모두가 비슷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같은 곳에 가서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인증샷을 남기고 결국에는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세고비아에서의 그 우연한 점심식사를 유난히 추억하고 애정 하게 된다.


수도교를 구경하고 대성당을 찾아가는 길에 배가 고파진 우리는 세고비아에서의 식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추천하는 통돼지요리 코치니요 아사도는 왠지 당기지 않았다. 뭔가 제대로 스페인답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긴 한데 여기까지 와서 검색창에 '세고비아 맛집'을 입력하고 싶진 않았다. 왠지 그렇게 검색을 하면 스페인에서의 첫 식사가 삼청동으로 마실을 나갔을 때 먹었던 평범한 식사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날도 덥고 허기져 더 이상 걷기 힘든 상황에서 약간의 모험을 하기로 했다. 마침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오른편에 이름도 제대로 읽기 힘든 식당이 하나 있어 무작정 들어가 앉았다.


주문을 하려고 직원분께 말을 건네는데 아뿔싸,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약간 당황했으나 이내 더 당황했다. 메뉴도 전부 스페인어로 쓰여있어서 손가락으로 찍어서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이가 지긋한 서버분께 손짓 발짓해서 그냥 '배가 고파요, 맛있는 거, 당신의 추천, 아무거나, 아! 그리고 상그리아 하나' 이 정도 영어 단어를 나열하니 알겠다고 하시면서 메뉴판을 가져가셨다.   



직원분의 연륜 덕분일까. 잠깐의 기다림 후에 '타파'로 이름 모를 세 가지 요리와 시원한 상그리아 한 병을 받은 우리는 정말 최고의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고기는 육즙이 가득했고 소스는 부드럽고 안에 들어있는 스크램블 된 달걀이 고소했다. 처음 맛보는 상그리아는 완벽하게 달콤했다. 신이 나서 게눈 감추듯 접시를 비우고 자리에 앉아 남은 상그리아를 따라 마시며 스페인 여행 오길 정말 잘했다는 대화를 나눴다.   



대성당, 완벽한 고요를 만나다



유럽의 마을들은 대성당(Cathedral)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마을을 대표하는 대성당은 그 지역이 가장 번영했을 당시 보유하고 있던 최고 수준의 건축 기술과 예술, 그리고 문화가 한 곳에 집약된 결정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선조들이 현대의 바쁜 여행자들이 짧은 시간에 다양한 문화적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박물관이랄까. 고마울 따름이다.






대성당 안에 있는 기도실. 정말 완벽한 고요함을 접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고비아의 대성당을 둘러보다 기도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기도실에 들어가 문을 닫는 그 순간 정말 완벽한 고요함을 접할 수 있었다. 외부의 소음과 완전히 차단되어 어쩐지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도시의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과 꼭 듣지 않아도 되는 광고, 의미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들과 같은 소음공해에 익숙해져 있다가 침묵이 갖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조용하다는 것 하나로 이렇게까지 사람이 편하고 안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조그만 소리로 말을 해보니 목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굉장히 크게 들렸다. 이곳에서 소리를 내어 기도하면 왠지 그 소리가 피부에 와 닿을 것 같았다. 의자에 꽤 오랜 시간 앉아있었다. 다른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아 귀한 침묵을 독점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기도실 안의 문 창살


세고비아의 단편들


대성당을 찾아가는 골목길

 

집집마다 창문에 화초를 키우는 문화가 부럽다


골목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성당


어디선가 만난 아름다운 패턴


세고비아의 여름


예쁘게 생긴 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팝나무와 비슷했는데 잎 모양이 좀 달랐던 것 같기도 하다


능소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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