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에서 일본 학생에게 일본 문학을 가르치는 한국인 이야기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한국 직원과 일본 직원이 함께 사용하는 IT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시스템에 서류파일을 올릴 때 그 서류가 어떤 언어로 작성된 것인지 선택하는 단계가 있었는데요.
선택지의 기본값은 ‘국문’이었습니다. 한국어 서류를 다루는 한국 직원이 다수라서 국문 항목을 기본으로 설정해둔 것이었죠. 드롭다운 메뉴로 된 항목을 클릭하면 아래로 ‘영문’, ‘일문’ 선택지가 나타났습니다. 물론 시스템은 한국어 말고 영어와 일본어로도 설정하여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업무를 하면서 시스템에 저장된 자료를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직원이 일본어 서류를 올려놓고도 서류 언어를 ‘국문’으로 선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아했죠.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시스템의 언어설정을 일본어로 바꾸고 나서 찾아본 뒤 눈치챘습니다. 항목 기본값이 ‘国文’이었거든요.
일본인 입장에서 국문은 일문, 즉 일본어였기에 다들 드롭다운 메뉴를 펼쳐보지 않고 너무도 당연히 다음 단계로 넘어갔던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칩니다> 첫머리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 예전 회사의 이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저자 고영란 교수는 자기소개가 항상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니혼대 문리학부 국문학과에 근무합니다, 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은 꼭 묻는다.
‘국문학’이면 한국 문학을 말하는 건가요? 아뇨, 일본 문학이에요.
이렇게 대답하면 바로 또 되묻는다.
외국인이 일본 문학을 가르친다고요? 혹시 영어로 강의를 하시나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셨나 보네요? 재미 교포세요? 아뇨, 일본어로 강의합니다.
아······ 재일 교포시구나. 매 순간 같은 질문이 쏟아지고 같은 답변을 되풀이한다.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나의 자기소개는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니혼대 국문학과 고영란 교수의 32년 도쿄살이를 보여줍니다.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친다는 말로 많은 분을 놀라게 해온 내(고영란 교수)가 어떻게 근현대 일본 문학 연구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일본의 대학에 취직했는지, 어떤 수업을 하는지, 외국인으로 사는 도쿄살이는 어떠한지를 담았”습니다.
1968년 광주 태생인 글쓴이는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일문과를 선택하는 학생이라면 만화나 잡지 등을 통해 일본문화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학생 고영란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외국어 능력자가 되고 싶었고, 일본어가 쉽게 배울 만한 언어로 보였으며, 취직이 잘되리라는 어른들의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일문과의 인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골랐습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 뒤 경희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1992년 말 조교로서 학부생들을 이끌고 사가현 어촌 마을로 가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게 첫 일본행이었습니다. 대학원생 고영란은 한국 대기업 직원 상대로 어학강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유학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1993년 가을, 니혼대학 파견 교환학생으로 추천되어 1년 동안 즐겁게 지내다 오려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만난 지도 교수님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 있냐’고 물은 질문에 (아마도 깊은 생각 없이) ‘하이!’라고 힘차게 대답한 것을 시작으로 우연이 겹쳐 일본 대학원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고영란은 니혼대학 국문학과 전임 교수가 됩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인사였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온 1994년, 우리 학과 교수 열네 명은 전원 남성이었다. 여성 교수가 부임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고, 난 여성으로서는 네 번째였다. 니혼대학 국문학과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당시 일본어 원어민과 동일한 조건으로 일본 문학만을 가르치는 외국인은 근세 문학 연구자로 유명한 로버트 캠벨 선생뿐이었고, 일본 근현대 문학은 내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저는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짧은 여행과 출장이 제 외국살이의 전부입니다. 그나마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을 여러 번 가봤네요. 대학시절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교환학생을 신청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그때는 사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죠.
일본에서 한국 대학으로 와 1년간 생활하는 일본인 교환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어학 실력도 늘리고 추억도 쌓아서 돌아가는 그 친구들에게 제 모습을 투영해 보았습니다. 학생인 제가 도쿄의 캠퍼스를 거닐고, 일본어로 유창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금세 저는 지금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깨달았습니다. 나이 먹고 뒤늦게 찾아온 열망 앞에서 열없이 먼 곳만 바라봤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칩니다> 같은 책이 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었습니다. 고영란 교수의 유학 경험담을 읽으며 키득거리고 고개를 끄덕였죠.
"아직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다. 유튜브가 있지도 않았다. 일본어 듣기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도쿄에 와서 반년 동안 테이크아웃을 뜻하는 ‘모치카에리(もちかえり)’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그 정도 실력이었다. 잘 모를 땐 그냥 웃으면서 “하이”하고 대답했다.
기본은 해야겠다 싶어 구몬에서 운영하는 펜글씨 교실에 등록해 3년 동안 다녔다. 수업 동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교실에 가서 한 시간 글씨를 쓰면 선생님께서 빨간 펜으로 교정을 해줬다.
··· 초등학생 동기들에게 “아줌마, 글씨 정말 못 쓰네”라는 놀림을 받았고 이 녀석들이 소문을 내고 다닌 덕분에 이웃의 많은 분이 알게 되었다. 다들 열심히 하라고 격려까지 해줬다. ··· 당시 나는 이미 박사 논문을 취득했고 도쿄 여러 대학에서 일본 근현대 문학을 일본 문학 전공자에게 강의했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한자는 구몬 교실 동기생인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매 학기 수업 첫날 나는 구몬 교실에서 초등학생과 더불어 기초 교육을 받았던 시간을 떠올린다."
일본 유학이나 취직을 고민하는 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고영란 교수님의 일화를 통해 막연함을 덜어내세요. 그리고 용기를 얻으세요.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 분투한 선배이십니다. 선배님에게서 담백한 지혜를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추신: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칩니다>는 단순한 일본 유학 경험담, 일본살이 이야기로만 채워져있지 않습니다. 외국인이자 연구자의 시선으로 ‘일본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 작가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의 이면, 언어를 둘러싼 차별, 전쟁기 일본제국의 출판 프로파간다 등에 대한 생각도 풀어냈습니다.
문학 작품보다 일본 근대 초기 신문과 잡지를 즐겨 읽는 고영란 교수는 일본 출판문화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출판 제국의 전쟁>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한국에는 <불량한 책들의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