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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Jul 02. 2023

00.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랜마

나는 할머니를  기록한다.

아이 둘 키우는 집이면 집콕하기 딱 좋은 주말의 비 오는 날, 나는 제일 바쁘다. 비 오는 날은 우리 가족에게 할머니가 쉬는 날 즉, 금능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아이 둘의 짐을 챙겨서 제주시내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차로 50분 거리로 이동한다. 타지에서는 50분이면 무슨 긴 거리냐 싶겠냐만은 제주에서 만큼은 50분 거리이면 산을 넘을 수 있는 대 이동의 거리이다.


평화로를 지나면서 날씨가 좋아지면 우리는 불길해진다.(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가 다르고, 제주시와 시의 동쪽, 서쪽의 날씨가 다르다.)


-설마 할머니 날씨 좋아지자마자 신나서 밭에 일간 거 아니겠지?

-우리 가겠다고 했는데 밭에 가버렸겠어?

-우리 할머니라면 그러고도 남아...


할머니는 비가 오면 파도가 세서 쉴 수밖에 없는 해녀다. 그리고 농사도 짓고, 남의 밭에 가서 일을 돕는다. 노인대학에 가서 공부도 해야 하고 독거노인 돌봄 선생님께서 오시면 열심히 숨은 그림 찾기도 해야 한다. 나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분명 여기에 적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튼 핵심은 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불길함은 역시나 예상 적중. 대문을 들어서는 데 조용하다. 분명 차 세우는 소리가 들리면 창고에서 금붓 손질하다가 나와서는 “왔어요~”하며 “예! 할머니 안아보져”해야 하는데 적막하다는 것은 할머니는 지금 집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 지금 어디?

-여보세요? 정민이가? 아이고 나 지금 여기 이모할머니 밭에 왔져게. 느네 올꺼랜 해신디 하도 와달랜 해부난 어쩔 수 어시 왔져. 냉장고에 글써뒁 와시난 읽고 밥 집에서 먹으라이. 밖에서 돈 줭 먹지말고.

-아~ 그럼 할머니 언제 오는데?

-일찍 가크매 가지말앙 집에서 놀암시라. 호꼼만 하고 가켜.

-알겠어. 놀고 있을게.

-어 착하다이~


뚝.

차에서 잠든 아이들이 깰까 봐 조심조심 차 문을 닫고 짐을 집 안으로 담던 남편이 조용히 묻는다.


-무사 할머니 밭에 갔댄?

-어~ 밥 먹고 기다리고 이시랜. 금방 온다고. 근데 뻥닮아. 일 잘되고 돈 많이 벌어지믄 더 하당 올걸?

-일단 이서 보게. 할머니가 이시랜 해시난.


할머니 말대로 부엌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의 쪽지 한 장이 있다.

직업적 특성상 맞춤법 틀린 게 눈에 보이지만 내가 틀린 거라고 하고 싶을 만큼 글자 하나하나 사랑의 마음으로 눈에 박힌다. 괜히 눈물이 난다.


- 힝 할머니는 이런 날 좀 쉬지 할머니 오늘 일 못한 값은 내가 용돈으로 드릴 수 있는데...


같이 편지를 읽고 있던 남편이 토닥거리며 달래준다.


-일하는 거 할머니가 좋아서 하시는 거네. 내불라. 할머니 말대로 고기 볶앙 보말이랑 먹게.

-알겠어 애들 데리고 와.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는 제주시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돈을 열심히 벌어야 했던 젊은 부부인 엄마와 아빠는 금능집 밖거리에 살면서 제주시로 출퇴근을 했다. 아빠는 한림 수협에 다니고 있었는데 제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퇴근한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엄마 아빠가 출근을 하면 우리는 하루종일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우리가 어릴 때는 해녀 일을 주로 하셨기 때문에 물질 가고 없는 날은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금능리 이곳저곳을 누비며 놀았다.


돈을 열심히 번 젊은 부부 덕분에 나와 여동생은 제주시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엄마가 일하는 시간 동안 학원을 원 없이 누렸으며 중학교 고등학교를 꽤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해서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여동생은 교육청에서 일한다. 돈도 벌겠다 여기저기 놀러 다닐 법한 때에도 나와 여동생은 틈만 나면 할머니가 있는 금능집으로 왔다. 마치 연어처럼 쉬는 날이 길어지면 엄마집이 아닌 할머니의 품으로 들어와 포옥 안기곤 했다. 할머니가 따온 보말을 까며 주말 연속극을 보고 할머니와 놀았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편안했고 안락했으며 그 시간들이 있어 제주시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선 항상 휴 그래도 어쩌겠어 살아내보자,가 되었다.


나와 여동생에게 할머니는 엄마이고 산이고 바다이고 우주이고 전부이다. 바다가 나의 직장이라는 할머니의 사명감에서 직업적 책임감을 배웠고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든 “아이고 웃음 난다”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기복 없는 사랑과 지지에서 부모로서 태도를 배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잃을까 봐 두려워서 할머니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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