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나 Jul 04. 2023

01. 할머니는 어떵하당 해녀가 된?

다들 그렇게 해녀가 된다.

최고점을 찍고 내려온 퇴역 군인에게도 이등병 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할머니, 할머니는 어떵하당 해녀가 된?

-어떵하당 되어, 다 해녀하난 나도 해녀했주.

-에이 그래도 왜 있네, 처음 해녀를 시작하게 된 계기나 그런 거. 해녀 일을 처음 어떵 누구한테 배워신지도.

-다 집안이 어려우난 돈 잘 벌어진 댄하난 한 거주.


할머니는 4녀 1남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할머니의 아버지에게서 낳은 자식은 할머니와 바로 아래 이모할머니 하나이고 나머지는 할머니의 어머니가 재가에 재가를 하여 낳은 배다른 형제들이다. 나중에 동생들이 그렇게 많이 생길 줄 몰랐던 할머니는 어쨌든 태어나서 5년 동안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그 시절 학교 선생님을 하셔서 그런지 그 시절 어른답지 않게 여자 아이여도 할머니가 영리하다며 학교에 보내야 된다고 하셨단다.


-아버지가 윤열이는 야무지고 똑똑해서 꼭 학교에 보내야 된댄 막 해나서. 주변에서는 여자아이신디 무신 교육시키냐고 하멍 다 필요 없댄 골아신디 나가 눈치빨랑 막 한글도 빨리 익히고 숫자도 잘 알아시난 영리해 보염신고라. 소학교 들어가보난 교실에 아이들도 무사 경 하영이심과. 경헌디도 나가 항상 앞줄에 앉았져. 선생님이 잃어보랜하믄 제일 먼저 손들엉 읽고. 이 글자 써보랜하믄 나만 손들엉 썼져. 답 말해보랜하믄 나만 손들엉 대답하고이. 잘도 똑똑했쟨.


할머니의 아버지가 소학교 선생님이셨다고는 하나 봉급이 많지 않았고 아프시기도 하셔서 병원비에 약값에 자매를 키우기가 꽤나 벅찼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진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할머니 학교 보내는데 쓰셨다고 하니 그 시절 할머니의 부모님은 분명 달랐다. 금능이라는 시골에서 밭일에 손 하나 더 보태면 일하는 시간이며, 수확하는 양이 달랐다. 하루 남의 밭에 일을 도와주면 받는 돈도 있어 가계에는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교육을 더 중요시 했다고 하니, 나중에 할머니가 그렇게 어려운 형편에도 본인 자식들은 4년제 대학을 악착같이 보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할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 초등학교 6학년 중반까지는 다닐 수 있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아프시다가 할머니가 6학년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도 할머니는 똑똑해서 나중에 학교 선생을 할 수 있을거라며 꼭 공부를 시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했다.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아내에게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유언이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이 할머니의 어머니가 자식들을 키우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해녀 일을 배울 수 있을 때 쯤 시집와서 남편의 봉급으로 먹고 살았다보니 기술이 필요한 해녀일을 하지 못하셨다. 대신 누구나 성실하면 접근할 수 있는 농사일을 하셨는데 농사일이라는 것이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있다보니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살림에 학용품까지 챙겨주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연필 없이 학교에 가는 날들이 허다해져갔다.


-엥 게믄 할머니, 연필도 어시 어떵 공부핸?

-어떵해, 연필 주워당 쓰는 것도 하루이틀이주. 그땐 다 경 가난해부난 연필도 귀해나서. 연필 떨어트령 가는 아이도 어섰져.


문득 교실에서 연필 주인 찾느라 목청 터지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분명 이름이 써져 있는데도 자기 거가 절대 아니라며 바득바득 가져가지 않고 내 연필꽂이에 꽂는 아이들이다.


-게믄 나중엔 진짜 당장 쓸 연필도 어서 시크라.

-오게, 경허난 선생님한테 골았주. 선생님, 나 연필 살 돈 어성 학교 못다니쿠다. 영 골으난 그 때 선생님도 너같이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안 하면 아깝댄하멍 연필도 주고 해나서.

-좋으신 분이다이. 겐디 왜 소학교 졸업 못핸?

-연필은 선생님이 줘신디 신발이 어성 못다니크라라.


충격적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큰 고비나 시련을 계기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발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신발?

-발은 계속 커지지 학교까지 걸어댕기잰 허난 신발이 남아 나크냐? 이제 신발이 망가지난 발바닥이 다 헷싸진거 아니? 경허난 내 발보고 막 속상해그넹 어머니가 큰집에 강 신발 살 돈 받아오랜했주.


할머니의 아버지에게는 형이 있었다. 할머니의 큰 아버지였다. 부모의 제사를 지내는 대신 큰 아들에게 모든 땅과 집을 유산을 넘기는 막돼먹은 악습이 할머니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빈부격차를 만들어버렸다. 할머니의 큰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꽤 사셨다고 했다. 그 집에는 할머니 또래의 딸도 있었다고 했다. 나였다면 같은 마을에 살면서 같은 국민학교에 다니는 멀끔한 사촌을 보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린 할머니도 그랬을까? 혼자가기는 내심 두려웠던 할머니는 할머니의 바로 밑 여동생(윤정 이모 할머니)과 손을 잡고 큰 집에 갔다. 집 앞에서 “양, 큰아버지, 윤열이 왔수다. 집에 계십디강?”하고 말하자 큰어머니가 나오셨다고 했다. 하필 어린 소녀가 용기를 낸 날, 큰아버지는 안 계시고 큰어머니만 계셨는데 그분은 친절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분이셨다고 했다.


그 뒤 결말은 맡겨놨냐며 당장 나가라고 하는 엔딩을 예상했겠지만 다행히 큰어머니는 신발을 들려서 집에 보냈다. 그 신발이 본인 딸이 신던 신발이어서 문제였지만. (할머니는 그 와중에 신발이 생겨서 학교에 갈 수 있어 좋았었다고 했다.)


신던 신발을 들고 온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의 어머니는 분노하셨다. 받은 신발을 들고 곧장 큰 집에 찾아가서 큰 어머니 얼굴에 던지고는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더러운 심보 먹엉 살지 맙서. 벌 받을 거우다.

그리고는 그 길로 할머니와 윤정 할머니를 데리고 월령리로 가서 계란을 사고 와 팔았다고 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신발도 사주고 남편의 빈자리를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할머니의 어머니가 쓰러지는 바람에 결국 할머니는 학교를 마치지 못했던 것이다.(그러고 보니 큰 고비나 시련에 의해 마치지 못한 것 맞네.)


-마음 아파. 할머니 그래서 할머니가 가장이 된 거?

-오게. 어머니 하던 계란 파는 거 내가 했주. 월령리까지 매일 걸어 강 계란 사 오고 팔고. 그걸로 동생들 먹을 거며 언니 공부며 시키곡.

-공부하고 싶지 않앤?

-무사 안허여. 하고 싶주. 경해도 내가 똑똑 해부난 한글 다 알앙 글 읽고 다 했져. 책도 읽고. 할망 지금도 매일 일기쓰고 있는 거 알지이?

-엉, 나 그 일기장 언제 한 번 보여주면 안 돼?

-뭐 없져게. 누게가 왔고 누구랑 뭐했져 그런 거 썼져. -귀여워. 하루를 기억해서 쓰는 게 대단하다.

-정민이 너 할망 치매 검사받으러 간 거 말해줘져신가? 거기 의사가 할머니는 자기보다 기억력 좋댄.


자신의 치매 검사 에피소드를 할머니는 영웅의 서사시처럼 늘어놓았다. 치매 검사는 의사가 말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그대로 말하는 것인데 내용은 대략 철수가 학교 운동장을 지나다가 축구공을 발견하고(기억 안 난다) 그런 내용이다. 그걸 의사 선생님이 말해보세요, 하자마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매우 강조!!! 대략 5번 반복해서 자랑한 부분!!!) 막힘없이 술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테스트 문제를 철수가부터 시작해서 했어요까지 다시 읊으셨다.


-대단한데 할머니? 나는 지금 할머니가 이야기하고 있어도 기억 못하클.

-뭐 대단해, 그거 무사 어려워? 나는 너무 쉬웡 이거가 끝이꽝? 게믄 이제 가쿠다! 하고 나왔져!


으스대는 어깨며 삐죽하는 입까지 귀엽다, 우리 할머니. 우리 반 9세 아이들의 귀여운 허세가 생각났다.


-그럼 계란 팔다가 해녀 물질은 어떵하당 하게 된 거?

-나이가 어령 계란만 팔당 15살에 이제 해녀 할 수 있겠다 하는 나이가 되난 했주.


할머니가 기억하는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다만 금능리는 어업을 주로 하는 마을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게 자란다면 당연한 수순처럼 물질을 했다. 다만 할머니는 공부를 좀 잘한다 소리를 듣는 국민학생 때 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국민학교를 마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포기했지만.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교육대학에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 열심히 살았더니 이렇게 복을 주는구나, 정민아 너무 착하다.라며 행복해했다. 그 때 오죽 자랑하고 다녔으면 여시코(우리 할머니의 창씨개명 당시 선자로 개명하게 되면서 불리게 된 이름인데 마을 할머니들끼리는 주로 이렇게 부른다.) 큰 손지 얼굴과 이름은 몰라도 교육대에 간 손지로는 알더라.


처음 할머니에게 물질의 기본기를 키워준 것은 할머니의 어머니였다. 어느 날 누워있던 할머니의 어머니가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를 데리고 포구로 따라오라고 했단다. 하도 어릴 적부터 바닷가에서 보말 따면서 놀았던 탓에 거부감이 없었던 자매는 어머니가 들어가라는 말에 입고 있던 옷만 벗고 다른 채비 없이 들어갔다고 했다.


-윤열아 윤정아 이거 보라이 이 돌멩이 어멍이 요디 얕은 바당에 던지크매 물 소곱에 들어 강 주서 오라이.

-알았수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점차 깊은 곳으로 돌을 던졌고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곧잘 돌을 주워왔다고 했다. 다소 날 것의 가족 내 테스트를 합격하자 상군해녀에게 맡겨졌고 나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떡볶이를 먹고 있을 나이에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그렇게 해녀가 되었다.


-요즘은 물질 배워주는 해녀 학교도 있댄 해라? 우리

어멍이 해준 것처럼 그 학교에 들어가면 돌 주성 오는거부터 시작헌댄. 나 어릴 때는 그런 거 어서났져. 다들 태어낭 아프지 않앵 크믄 해녀가 되는 거주.

작가의 이전글 00.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랜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