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않던 그런 부모를 만났다면,

-동화책으로, 마음토닥토닥-

by 이음음

내가 원하지 않던 그런 부모를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이겠네요.

어쩌면 마음속으로 한 번쯤 해 본 질문일 수도 있고요.

이 질문은 딸 아이가 가지고 온

책 한 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옛날, 돈을 사랑하는 왕과 옷을 사랑하는 왕비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단 하나, 아기가 없었습니다.

부부는 마술사를 만나 아기를 갖게 해주면 금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술사의 도움으로 왕비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부는 마술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마술사는 부부에게 아기 대신 길쭉한 귀와 꼬리를 가진 당나귀 아들을 주었습니다.


부모인 왕과 왕비 외면할만큼

남루한 외모를 가졌지만,당나귀 아들은 기타를 잘 쳤습니다. 그러나 왕과 왕비는 당나귀 아들에게도, 그의 기타 실력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당나귀 왕자는 결국, 부모가 있는 성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성에 도착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기타를 잘 치는 당나귀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듯), 당나귀 왕자는 새로운 성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공주를 만나 멋진 왕자로 변신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동화책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소윤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동화책을 덮었지만, 저는 무언가 아쉬웠습니다.

멋진 왕자로 변신한 당나귀 아들은

다시 부모를 만나러 갔을까요?

그는 부모를 잊은 채,

공주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을까요?





예전에 부모님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거부 혹은 거절당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어릴 때 부모로부터 위협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면 그 기억을 나눠주세요" 등의 질문에 답을 작성하고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컵에 수저를 넣고 휘젓었더니 바닥에 깔려있던 침전물이 뿌옇게 일어난 것처럼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부모님을 만나고 보니, 제가 설문지에 적었던 부모님과 지금 내 앞에 있는 부모님은 다른 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크게 다가왔던 일들이 되돌아보니,

그리 심각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커다랗게 보이던 초등학교 건물이

어른이 되어서 보니 작은 건물이었다는 것에 놀라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빈손으로 하나하나를 이루며 나를 키워내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안쓰러웠습니다.




상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마음에 묻어두면 정말 상처가 돼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성장한 내가 그 상황들을
다시 꺼내놓고 재해석하면서
치유가 일어나기도 하죠.



용기를 내어 꺼내놓고 보니 그리 큰 상처도 아니었습니다. 그 정도 아픔은 끌어안을 만큼

마음이 넓어진 이유도 있겠지요.

부모와 자식도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하기에

결국 상처를 남깁니다. 다만, 상처가 아프면 잠시 기다렸다가 (좀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요)

꺼내서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더군요.

혼자서는 그 일이 두렵다면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과 함께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왕과 왕비는

당나귀 아들을 평생 잊고 지냈을까요?

그토록 원했던 아기가,

사람이 아닌 당나귀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왕과 왕비에게도 큰 상처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다행스럽게도 당나귀 아들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주는 공주에게 사랑을 배웠지요. 그러니 언젠가 당나귀 아들도 부모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사랑해보려는 용기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사랑은 흘러가니까요.




꼬랑지:

책 제목은 <The Donkey Prince/ 당나귀 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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