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바득 사는 인생의 권위에 다리 한번 걸어보는 소설가
'똘끼'가 넘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늘 농담조였다.
그 친구는 자극적이며 흥미진진했고,
그의 유머는 유치하면서도 창의적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은 피로해지기도 했다.
그의 말속에서 진실과 농담을
구분하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이원식의 타격폼>을 읽는 내내
그 친구가 생각났다.
이 소설과 그 친구가 너무 닮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소설의 작가가
그 친구를 만나면 왠지
"어이~ 당신! '니미뽕 큰 롤' 정신을 아는 거 같아!"하며
그 친구와 함께 '개다리춤'을 출 것 같다.
소설계에서 '참 특이한' 작가로 통하는
박민규가 자신보다 더 '똘~아이'라고 소개한
박상의 소설, <이원식의 타격폼(박상 단편집)>은
이렇게 농담에 농담을 쌓아 자신만의
'웃기는 성'을 만들었다.
그 성엔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꿔어어 꽃병, 그 반대말인 꾱꾱꾱 꽃병 등등.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를 가득 적어두고는
삐딱하게 코파는 자세를 잡고
먼저 시비를 건다.
"꼭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해?
이 사회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어?"
그 친구 주변에는 그의 무분별한 농담을
무례하다며 손가락질하는 이들과
그를 재미있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소설 주변에도 역시, '문학님'에게 말장 난질한
놈이란 삿대질하는 이들과 그의 유머에 은근한 중독성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그 친구에게 그랬듯이 후자가 되기로 했다.
그 친구는 지금, 어엿한 사회인으로
직장생활 잘 하고, 현란한 말솜씨로
예쁜 연하 '소녀'들과 행복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박상 소설이 단지, 소설계에 '큰 웃음'한 번 주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선 그가 슬며시 보여준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농담 속
인생의 깊이를 좀 더 파고든다면
그 친구처럼 행복한 시절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참, 야구 얘기 좀 그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