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봄과 우울증.
친할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종종 두 손 꼭 붙잡고 함께 옵니다.
통계적으로도 우울증으로 인한 사건이
4월부터 급증해서 5월에 가장 자주 일어난다고 하니,
봄과 우울증이 먼 사이는 아닌 듯하네요.
특히 여성들에게 더 그런 듯합니다.
제 주변을 둘러봐도 봄이 되면
남자들은 피로한 몸을 얘기하지만
여자들은 쓸쓸한 마음을 호소합니다.
몸이 봄을 타면 파릇파릇한 봄철 채소로
기력을 회복하면 되지만
마음이 봄을 타면, 해결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엄마이자 아내인 그녀들의 마음이 봄을 타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희생양은 남편이나 자녀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녀들의 증상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이들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한 톤 아니
두세 톤 높아지기도 합니다.
남편의 밥을 챙겨주는 것이 슬슬 짜증 나기 시작하다가
남편이 밥 먹는 모습까지 미워지기 시작하면,
마음은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우리 아내는 봄을 타지 않는다며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남자들을 추억 속에서 하나 둘 환생시키거나,
하늘거리는 시폰 블라우스나 원피스를 찾아
옷 가게가 쭉 늘어선 골목을 방황하는 것도
하나의 증상일 수 있으니까요.
봄에 만나는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은
우리 집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창밖으로 벚꽃나무가 보이던 봄날,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봄이 되니까 입맛이 통 없네, 너도 그래?"로
시작된 친구와의 통화는 신세한탄이 담긴 넋두리로
이어졌습니다.
봄이면 나타나는 마음의 어려움인 것인지
마음의 어려움이 어쩌다 봄에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결론은 이랬습니다.
"우리 봄 타나 보다 “
"그러게. 우리 맛있는 거라도 먹으며 풀까?"
오랜만에 먹어보는 떡볶이, 순대, 튀김
삼총사를 앞에 두고 속마음을 한바탕
풀어내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어느새 나의 봄은 우울증의 손을 슬며시 놓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친구와 내가 주고받은 것은 ‘사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상에서 만나는 사랑은
'받는다'란 느낌보다 '언제까지 줘야 하나' 하는 느낌으로
남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고 힘이 듭니다.
사랑. 잘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될 때
사랑에 대한 답을 찾아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
발견한 것은 아주 오래된 문장이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기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
내가 생각한 사랑은
남편, 아이들, 가까운 친구들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사랑받는 느낌’의 그것이었는데,
이곳에 적힌 사랑은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사랑을 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다른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시간과
밤새 한 숨도 못 자며 아픈 아이를 돌봤던 시간이
쌓이고 나서야 나는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랑해.
봄,
내 곁에 있는 이들을
다시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