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앙고백과 삶이 다른 걸까?

몸과 마음에도 속도가 있다면

by 이음음

<교회 50년사> 작업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교회를 더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그런 기도와 결심을 담아 일한다고 했지만

최근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표현되는

나의 언어를 의식하고는 당혹스러웠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 힘든 일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무너져 버릴 고백과 기도였던가.



얼마 전,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찬양 시간에는

일어서서 두 손 들고

찬양을 하잖아.

그런데 카페에 앉아서

신앙적인 대화를 할 때는

왜 다른 얘기를 하는 걸까?"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마음을 따라 살기를 기도하면서도

뒤돌아서서 전혀 다른 말을 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몸과 마음의 속도 차이를 생각해 본다.





몸이 마음을 따라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달리,

보이는 몸의 변화는

다른 위치에 서기 위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습관을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몸을 바꾸는 데는

의식적인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의식해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그래서 몸의 방향을 바꾸는 데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말씀대로, 은혜받은 대로 살지 않는 모습에

낙심하며 "나는 안 되나 봐."

하며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몸이 마음을 따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나 자신을

율법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좀 더 관대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런 노력이

신앙 고백과 삶이 다른,

몸이 마음의 결심을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몸과 마음의 차이,

그런 연약함을 가지고

다시 나아간다.

단편적인 인간의 실수를

전체의 실패로 여기지 않는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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