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정말 날 구원해줄 수 있나요?
히어로가 아닌 실패자처럼 보였던
광야에서, 광장에서
평생을 외치며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했던
요한이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다.
그분의 오실 길을 준비하던 요한의 사명은
이제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을 드려,
열심을 다해 달리던
요한에게 이제 멈춰 서야 하는 때가 왔다.
예수님이 오시자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러
요한이 아닌 예수님께 몰려갔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상황을
전하니 요한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_요한복음 3장 30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요한이 외친 목적은
자신의 흥함을 위함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순간에 부딪힌다.
감옥에 갇히게 된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쭈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_마태복음 11장 3절
요한은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듣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이 요한을 이렇게 의심하고
흔들리게 했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입니까?"라는
요한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신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는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_마태복음 11장 4.5절
예수님은 하실 일을 알고 계셨다.
그가 할 일은 멋지거나 대단해 보이는 일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이었다.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올라서서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요한은
명예, 인기,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요한을 흔들리게 했을까?
요한이 생각했던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람들은 생각, 경험, 지식을 근거로 해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과 경험, 지식에 비추어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기 쉽다.
나의 생각과, 경험, 지식은
세상을 살면서 쌓여간 것들이다.
세상의 죄성이 묻은 채 쌓인 것들이다.
그렇게 세상에 물든 판단력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온전히 깨닫고 알 수 있을까?
'
창조주는 피조물을 이해할 수 있지만
피조물은 창조주를 이해할 수 없다.
피조물은 말씀을 읽으며
창조주를 따라가고 경험할 뿐이다.
요한이 고백했던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들린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_요한복음 3장 30절
이 고백의 깊은 의미를 요한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나에게 이렇게 해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이렇게 하실 것이다."라고 했던
자신의 기대와 생각과 판단조차도
다 무너지고 나서야
예수님의 길이 보인다.
인간도 원수도 상상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십자가 길.
세상을 멋지게 구원하는 히어로의 모습이 아닌
창조주가 피조물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채찍질당하며
무기력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창조주의 모습.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신이라면 이렇게 무기력하게 세상을 내버려두는 패배자의 모습일 수 없어."
"이렇게 처참한 죽음을 선택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려 했던 그는 진정한 신이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