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딘가' 한창 고민했을 때 그 길만 안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가야 할 길을 알면서도 종종 다른 이들이 가는 길을 기웃거리게 됩니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의 길이 대로처럼 보입니다. 더 선명해 보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만이 아닌 남의 길도 왠지 더 대단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있더군요. 그들도 희미하게 보이는 길을 걷고 있을 뿐인데 말이죠.)
내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게만 보이면 '이 길이 진짜 맞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길이 정말 이 길인가?' 불신이 담긴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렇게 옆을 기웃거리며 걷다 보면 작은 돌에도 걸려 넘어지고는 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섭섭해집니다.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_요한복음 21장 21절
베드로는 왜 요한의 앞날이 궁금했던 걸까요.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혹여 베드로 안에 사랑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건 아닌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한)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_ 요한복음 21장 20절
예수님이 나보다 요한을 더 사랑하시는 것 같아. 예수님이 나보다 요한에게 더 좋은 걸 주시는 게 아닐까?
내 마음이
베드로의 마음 같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할 때, 주는 사랑이 아니라 받는 사랑을 계수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쓸쓸해지고는 합니다. 깨진 항아리처럼 채워도 채워도 허기집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 저를 사랑하세요?"라고 묻는 나에게 예수님은 도리어 "네가 나를 사랑하니?"라고 묻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미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제 내 차례입니다.
충분히 사랑받는 자라는 믿음. 부족함 없이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주고 계신다는 신뢰. 그 안에 머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더 이상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