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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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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May 27. 2021

도시의 생존자들에게 전하는 그림

여주미술관<만첩산중서용선> 전시


최근에 들었던 특이한(?) 질문

"언제 노잼시기였어요?

혹시 지금이 노잼시기?"


무엇을 해도 재미나 의욕을

느낄 수 없는 시기를

노잼시기라고 하더군요.


노잼시기까지는 아니어도,

노잼시간을 바꿔보자며

남편과 그냥 떠났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곳.


여주의 고즈넉한 풍경과

커다랗게 열린 창으로

산을 바라보는 카페는 보너스.


이 모든 고요함과 잔잔함을

단숨에 깨는 전시가 있었으니.


거침없는 선과 색의 힘을 내뱉는

서용선 작가의 전시, <만첩산중>입니다.


전시를 보고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으스스한 느낌으로

약육강식의 도시 속을 거닐게 했던

큐레이팅에 감탄했던!


미술관에서 자주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뭔 뜻이래?"를 중얼거리던

이씨 성을 가진 남자도 흥미롭게 봤다는 소문.


거칠고 원시성 가득한 붓질과 컬러로

서용선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여러 나라의 도시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관람객은 좁은 통로를 지나 그림이 빼곡히 겹쳐선 골목길에 들어섭니다. 전시장에 가벽을 세워 골목처럼 

좁은 길을 따라 걷는 관람객은 "회화의 산중을 헤매는“ 경험에 맞딱들이지요. 서용선 작가의 그림이었기에 

이 길은 여유로운 산책로가 아닌 치열한 삶이 부딪히는 도심의 골목이 되었습니다. 


거친 붓글씨를 닮은 검은 라인, 붉고, 파랗고 노란 원색의 물감, 경직된 표정의 도시인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그림은 도시의 약육강식의 잔인한, 그러나 생존력을 가진 힘을 뿜어냅니다. 


그 에너지는 미술관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300호 사이즈의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절정에 다다릅니다. 기계음과 북소리가 뒤섞인 낯선 사운드 속에서 강렬한 힘을 내뱉는 100여 점의 그림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경험은 생경하고 새롭기만 하네요.


사진으로 다 담기지 못하는 그림 골목


서용선 작가의 꿈틀거리는 붓질과 색채는 민중 미술을 떠오르게 하며, 독일의 표현주의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확실한 사실은, 그러한 표현이 가진 힘은 독특한 목소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풍경은 흔히 보는 도시의 일상입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철 안의 무심한 얼굴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어두운 표정의 남자. 이들과 상관없이 도심을 돌고 도는 자동차들. 무심히 지나치던 도시의 풍경이 서용선 작가의 붓 끝에서 소리가 됩니다. 일상의 나른함과 안일함을 깨우는 외침이 됩니다.  도시에서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삶에 대한 외침.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담긴 원색의 에너지는 직접 봐야한다


하지만 외치기만 하는 전시는 보는 이를 피로하게 만들지요. 강렬한 색채로 진지하게 지금, 이곳의 현실만을 전하지 않습니다. 전시의 도입과 말미에 놓인 우리네 산의 풍경과 한옥집과 머리에 갓을 쓴 남자와 쪽진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은 팍팍한 현재를 벗어나 다른 시공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길을 열어둡니다. 관람객에게 상상의 공간을 내어줍니다.


역사 속의 인간은 서용선 작가의 또 다른 주제이기도 하다


선명한 방향을 갖고 걷는 길에서는 반대편에 선 이들도 만나듯이, <만첩산중 서용선> 전시도 호불호가 나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요란하고 낯선 사운드와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작품들은 일부 관람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지요. 특히 미술관에서 고요한 쉼과 잔잔한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관람객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나른함을 깨고 안일함에서 벗어나는 외침을 찾는 관람객에게는 색다른 "쾌"를 경험하는 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투데이N에 게제한 내용을 편집한 글입니다.

산이 바라보이는 미술관 카페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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