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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Jul 17. 2024

아빠와 꼬끼오들

미국에서 몰래 날아온 딸과 사위

우리 가족은 서프라이즈를 좋아한다. 깜짝 선물, 깜짝 파티, 깜짝 방문. 예상치 못한 이벤트는 이미 알고서 기다리며 설레는 감정의 밀도를 응축시킨 후 한순간에 폭발하게 해서 찰나에 느끼는 기쁨의 양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가끔은 기쁨이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와 서프라이즈'의 순간 상황을 인식하려고 큰 눈을 뜨고 삐걱거리기 까지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함박웃음을 짓는 식구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역시 서프라이즈를 하는 이유다. 서프라이즈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즐겁지만 주로 서프라이즈를 하는 이들은 딸래미들이고, 받는 이들은 부모님이다.


나와 남편은 홍수로 불발된 인도 여행을 대신하여 일주일 넘게 이탈리아를 돌아다녔다. 예전 같으면 여행이 주는 새로운 자극에 중독되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겠지만 각자 세 번째 방문한 이태리에서 우리는 더위와 성수기 관광지의 비싼 물가에 지쳐버렸다. 여행 8일째 되던 날,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다는 걸. 하지만 2주나 휴가를 쓴 남편은 나머지 일정을 우리 집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는 걸 아쉬워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다른 집이 있는 곳,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것도 가족들 몰래, 서프라이즈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대전. 동생들과 이제는 제부가 되어버린 성창, 30년 지기 쏭에게 성공적으로 서프라이즈를 시전 했다. 눈이 두 배는 커진 이들의 반응을 보니 미리 말하고 싶었던 걸 참 잘 참았다 싶었다. 자연스레 등장했어 ‘나 왔어~’하면 애들은 고장 난 듯 순간 멈칫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동시에 크게 웃는다. 나의 등장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이제 나와 남편이 한국에 온 걸 아는 이들이 총 4명 더 생겼고, 우리는 엄마, 아빠가 있는 영천으로 가기 전까지 이를 비밀로 하기로 했다.



영천으로 가기 하루 전, 엄마, 아빠의 위치 파악을 위해 자연스레 가족 단톡방에 카톡을 남겼다.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예상은 되었지만, 혹 다른 곳에 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엄빠 뭐 해?"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엄마는 가게 뒤쪽 화장실에 물이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에 도착 한 때는, 열흘 넘게 지속된 장마로 침수 피해와 인명피해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 집에까지 비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당장 집에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뒤이어 아빠에게서도 카톡이 왔다.

"아빠 농장이 일 미터 잠겼어."(원본: 아베 농장이 일메터 잠겨어")

뭐!! 그럼 꼬끼오 들은? 1미터가 잠겼다면 아빠 계란 농장의 청계들이 무사할리 없었다. 아빠의 자재창고의 한편에 마련해 놓은 닭장은 주변보다 지대가 낮은 곳이었다. 농장뿐만 아니라 자재창고에 까지도 물이 들어차 발전기며 나무톱 등도 물에 잠겨 피해가 꽤나 큰 것 같았다.

“닭은?” 둘째, 수빤의 물음에 엄마가 대답했다.

“닭들은 나무 걸쳐 놓은데 다 올라가 있어서 괜찮아. 근데 배가 고프겠지. 물이 잠겨 못 내려오니까.”

다행히도 닭들은 무사했다. 다만 좁은 닭장의 한가운데 걸쳐진 나무에 쪼로록이 앉아 차오르는 물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하룻밤을 버텼을 거다. 시차로 몽롱하던 정신이 엄마, 아빠의 수해 소식에 번쩍 들었다. 남편과 나는 두 시간가량 상주영천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다 달았다.



우리가족 단톡방


우리는 엄마 가게에 먼저 들렀다. 가게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엄마는 3초간 놀란 눈을 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어머나’를 내뱉었다. 어머나를 연발하며 일어서서는 나를 꼭 껴안았다. 엄마는 놀라고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고 따라쟁이인 나도 같이 울었다. 엄마는 사위도 꼭 껴안았다. 엄마는 껴안을 때 있는 힘을 다해 끌어안는데, 나는 그 압박감이 좋다. 있는 모든 사랑을 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 랄까. 눈물의 상봉을 마치고, 아빠가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빠가 아마 닭장에 갔을 거라 했다.

“글쎄 닭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받았을지 생각하면 너무 안쓰러워. 밥도 못 먹고, 물은 차오르고, 정말 힘들었을 거야. “

“그러게 말이야. 닭을 왜 키우는지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된다니깐.” 엄마의 걱정 어린 말에 나는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 아빠의 결정에 일침을 놓았다.

다행히도 엄마의 가게는 괜찮았다. 뒤쪽 화장실로 물이 약간 들어왔는데, 이를 함께 공유하는 옆집 가게 총각이 미리 조치를 취한 덕에 큰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아빠에게도 깜짝 방문의 기쁨을 주기 위해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능청스러운 연기로 가게에 물이 찼으니 얼른 오라고 했다. 이럴 때는 엄마도 장난꾸러기다. 삼십여분 후, 아빠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는 문 앞에 서있는 사위를 보고서 깜짝 놀라 “김서방!!” 하며 끌어안았다. 김서방을 안고 있는 아빠 뒤로 나도 가서 아빠의 등을 안아줬다. 아빠를 향한 서프라이즈도 만족스럽게 마치고 나서 우리는 닭장의 현 상황에 대해 다시 물어볼 수 있었다.


“어제 가니깐, 닭장에 물이 가득 차서 사료 통도 둥둥 떠다니고, 닭들은 다 나무걸이에 다닥다닥 앉아 있더라고. 그리고 냄새는 또 얼마나 나는지. 닭똥이랑 질퍽거리는 진흙이랑 진창이야. 오늘 아침에 물이 빠져서 닭을 풀어주고 밥을 줬는데도 애들이 내려와서 먹지를 않아. 엄청 무섭나 봐. 그래서 밥 주고 닭장문을 열어 놨는데도 계속 나무 걸이 위에 앉아 있는 거 보고 왔지 뭐. 그리고 저녁에 다시 갔는데 그제야 사료를 좀 쪼아 먹더라고. 근데 정말 아비규환이야. 닭들한테도 못할 짓이다. “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엄마 친구가 가게를 찾았다. 아줌마는 평소 여과 없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고 바른말을 너무 잘해서 이를 품어줄 수 있는 엄마 말고는 친한 친구가 많지 않다. 그런 아줌마가 아빠가 닭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선 엄청난 사투리로

“아이고, 그라게 짐승을 왜 키우는교? 털 달린 짐승은 키우는 거 아니라예.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닭 누가 봐주껀교. 다 신경 쓸 일 투성이지.”

아줌마의 팩트 폭행에 아빠는 말을 잃었다.


마지막 서프라이즈 대상인 할머니를 놀라게 하는 것으로 우리의 깜짝 방문은 마무리되었다. 시차 때문에 골골거리던 남편은 9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오래도록 엄마와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1시에 잠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자연인이다’에 닭을 키우는 아저씨가 나왔다. 맑은 물을 먹을 수 있게 계곡의 흐르는 물을 끌어와 닭 전용 음용수로를 설치하고, 뽀송한 겨가 깔려 쾌적하고 넓은 그 아저씨의 닭장은 6마리가 살고 있는 치킨 호텔이었다.

“여보, 저것 좀 봐. 닭들이 저렇게 살아야지. 진짜 호텔이다 호텔. 우리 닭들은 너무 불쌍해. 좁은 닭장에서 얼마나 열악한지. 게다가 비까지 들이찼으니 얼마나 무섭고 스트레스를 받았을꼬.” 엄마가 닭들을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아빠도 그걸 보고 느끼는 게 있었는지 아무 말 않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아빠는 어김없이 일찍 일어났고, 착한 사위는 장인어른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하고 온 후였다. 8시, 엄마가 끓여준 맛있는 떡국을 먹고, 아빠는 농장에 가보겠다고 했다. 나는 늦게 잠자리에 든 탓에 피곤해서 더 잘 테니, 남편에게 아빠를 따라 다녀오라고 했다. 꼬끼오들 사진을 많이 찍어오라는 말로 남편을 배웅했다. 아빠는 아침저녁으로 닭들을 닭장에서 풀어줬다가 다시 몰아넣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빠와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이 현관을 들어오며 내게 말했다.

“꼬끼오 한 마리가 죽었어.”

“엥? 꼬끼오가 한 마리 죽었다니. 무슨 일이야? 물에 빠진 거야?” 깜짝 놀라 내가 되물었다.

“어제 안 그래도 한 마리가 비실비실하면서 밥을 안 먹고 내 앞에서 꾸벅꾸벅 거리더라고, 두 번째로 큰 수탉하나가 죽은 거야.” 아빠가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애들은 어떻고? 여보, 닭 농장에 다녀오니깐 어때?”

내가 물었을 때, 남편은 대답대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닭들은 여전히 공중에 걸쳐진 나무판 위에 올라가 있고, 한 마리가 땅바닥에 철푸덕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이 나만 들리게 속삭였다.  

“현장은 충격 그 자체였어. 냄새가 너무 나고 똥이 온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 장인어른은 장화를 신으셨는데, 나는 슬리퍼를 신었단 말이야. 혹시 발에 상처라도 있어서 그 진창에 들어갔다 세균이라도 옮으면 큰일이라 나는 그냥 멀찌감치 보고 있었는데 닭장 한가운데 검은색 비닐 같은 게 있는 거야. 그래서 장인어른을 불렀더니, 장인어른이 인상을 확 찌푸리면서 닭장 안에 들어가서 그 닭을 꺼내시더라고. 내가 ‘땅이라도 팔까요?‘ 물어보려 했는데, 이미 장인어른이 닭을 덤불숲으로 던지셨어.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서있었던 거야. 아버님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어.”

평소에도 청결을 외치고 다니며 하루, 한 번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소독하는 깔끔쟁이 남편은 아빠의 농장에서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평소 남자다움 상극을 이루는 그놈의 깔끔 떠는 습관이 공존하며 그의 자아를 이루고 있기에, 마음은 아빠를 도와야 한다고 외치지만 몸은 더러움 앞에서 꿈쩍하지 못하고 남편은 아빠를 지켜보다 돌아온 것이다.

“마음이 진짜 안 좋더라고. 다른 애들도 한 마리가 죽어서 충격인지 또 다 나무걸이 위에 앉아 있고. 그래도 4개월 밥 주고 보살피면서 정들었는데. 마음이 안 좋다.”

애완동물이라곤 탈출해 버린 소라게 한 마리 키운 게 전부인 나에게 아빠가 느끼는 꼬끼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충분히 공감해 줄 순 없었지만 어렴풋이 속상한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이제 열한 마리인 거야?” 내가 물었다.

“아니? 열 마리던데?”남편이 대답했다.

아빠는 지난주에 한 마리가 죽었다고 말했다. 비가 오고 산에 먹을 게 없어서 들짐승이 한 마리를 사냥해 먹었다고 했다.


아빠의 계란 농장은 아직 개시도 하기 전 장마로 두 마리의 죽음이라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장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닭들이 계란을 낳으려면 아직 한 달은 더 키워야 한다. 게다가 아직 암탉이 몇 마리인지 알지 못한다. 한 마리는 들짐승에게, 한 마리는 수해에 잃었다. 넉 달간 쏟은 정성이 그렇게 허무하게 떠났을 때, 아빠의 마음 또한 좋지 않았을 거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속에서 아빠는 꼬끼오 들을 보살핀다. 살아남은 닭들 역시 불쌍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물바다가 된 집 안 테이블 위에서 물도, 식량도 없이 24시간을 서 있는다고 상상해 봤다. 그 무서움 속에서 꼬끼오들이 살아남았으니 트라우마가 오죽할까. 아빠가 키우던 애들이라고 하니 말 못 하는 동물에게도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아빠에겐 왜 괜히 닭을 키워서 이런 번거로움 일을 만드냐고 면박을 줬지만, 이미 키우게 된 꼬끼오들에게 신경이 쓰이고 애잔함을 느끼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온 식구가 그랬다. 아빠와 꼬끼오들. 미워 할수 없는 식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 우리 하루는 경주 힐튼에 가서 자고 오자.” 다행히 우리가 있던 날은 날씨가 좋았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서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았으니 평소 못하던 효도를 하고 싶었다.

비가 그치고 저녁에는 시원한 산들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 아빠와 호캉스를 제안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다녀온 후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가 대전에 도착한 그날 밤 아빠의 농장에는 또 다른 악몽이 들이닥쳤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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