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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Aug 11. 2024

빈티지한 카페를 좋아하세요?

옛날 펍을 카페로 변경하면

남편은 늘 의심한다.

다른사람들은 자신보다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고. 취미도 있고, 친구도 많고 활동적인 것 같다고. 자신에겐 뭔가 부족한 것 같다고. 다른 이들의 인생은 재미있고 자신의 인생은 지루한 것 같다고.

일하고 나서도 할 게 없으니, 빵사먹거나 커피마실 곳을 찾잖아. 다른 사람들은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거나 멋진 취미를 가졌는데 말이야.


샌프란시스코 해안가를 거닐다 보면 서핑, 윈드서핑 같은 해양스포츠나 사이클링, 러닝을 하는 이들, 바로 옆 골프장의 골퍼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아마 그들을 염두해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건 봉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 일거야.

한국에서 처럼 단체행동을 중시하는 회사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어린시절 미국에 이민 온 후 학창시절 이리저리 전학도 많이 다녀 오랜 친구가 있는것도 아닌 내 남편은 무리지어 어울리고 다니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독립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하곤 한다. 평범하지 않았던 어린시절 탓에 그는 자신이 남과 너무 다른 건 아닌지 돌아볼 때가 있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라 제대로 된 취미 하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로 빚어진 자신의 인생이 고루한 느낌이란 말을 자주 한다.


여보, 다른 사람들이 특별한 걸 즐기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일에 치여 여가 생활을 못 즐길거고,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아마 우리처럼 주변에 가 볼만한 카페를 찾아갈걸? 나는 친구도 많고, 취미도 많았지만 결국 봉이랑 같이 있잖아.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도 그랬고 말이야.


인생에서 뭔가를 놓치고 살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가 가끔 있지만 그럴 때 마다 너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다독여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남편이 그런 친구이길 바랬기에 나도 남편에게 그런 버팀목이고 싶었다. 여보 괜찮아. 우리는 잘 살고 있어. 알콩 달콩 둘이서 즐겁잖아. 재미있는 동네에서 특색을 지닌 가게들을 방문하며 관찰 하는 것도 취미라면 취미고 말이야. 남편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의심 할때 마다 나는 그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해준다.


여행을 가지 않는 때면 우리는 남편이 취미로서 의심하는 동네 카페 탐방에 나선다. 남편이 이렇게 소비적인 삶을 살아도 될까 의심하지만 소소한 행복은 작은 소비에서 얻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런 우리가 잘못된 게 아니란걸 나는 그에게 늘 일깨운다.

특색을 가진 가게는 손님을 이끈다. 발보아 스트릿에 위치한 Simple Pleasures Cafe가 그랬다.


카페의 내부는 몇년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르지만 딱 봐도 족히 내 나이 이상은 되었을 것 같은 여러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천장의 선풍기, 한쪽 구석에 놓인 피아노, 커다란 책상들과 오래 되어 해진 가죽 소파. 세월의 때가 묻어 반질 거리는 빈티지한 카페에서는 힙한 문신을 팔에 한 동양인 바리스타가 부드러운 라테를 내려준다. 또 카페에 가냐며 투덜거리던 남편도 새로 발견한 카페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내부 이곳저곳을 살핀다. 이 튼튼한 바를 봐. 아마 1960년대에 쓰던 술집 바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아. 벽도 투박하고 튼튼한 나무로 되어 있고. 오래된 것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멋져. 나도 이런 가게를 가지고 싶다. 남편은 오래도록 가게의 멋짐에 대해 이야기 했고 나도 그가 감동한 부분들에 빠져들며 카페를 살피기 시작했다.


카페가 아름다운 건 그저 오래된 내부 인테리어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곳을 채운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다. 맥북을 가지고 와 일하는 젊은 이들부터, 낱말 퍼즐 맞추기를 하는 동네 터줏대감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이었다. 카페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서로 자주 마주치는 듯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물었고 친근한 분위기에 나와 남편도 왠지 그곳에서 진짜 로컬 커뮤니티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카페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내가 앉은 구석 자리 까지 자신의 악기를 든 사람들이 자리 하기 시작하더니 곧 한 여성이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선보였다.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주변 이들에게 공유하는 예술가는 나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나도 내 글과, 내 그림과, 내 노래와, 내 시를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자연스레 서로의 창작물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느껴졌다.

카페들이 지역의 사랑방으로써 그 기능을 하는 것을 보면 반갑고 정겹다.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되는 곳으로서의 카페는 또 찾고 싶은 사랑스런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봉이, 스포츠 같은 활동적인 취미가 없어도, 여행을 떠나거나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로서 지금처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즐거운 여가 생활이야. 우리는 보석 같은 장소를 찾으며 행복을 나누는 서로가 있잖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맛집을 찾거나 빵집을 찾아 다니는 중일 거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시작하면 되고,  없다 해도 걱정할 건 없어. 내가 이렇게 우리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고, 이걸 들춰보며 모든 것이 의미 없지는 않았다는 걸 어느 지루하기만 한 미래의 하루 중 어느 순간,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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