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도 천재가 없다고?

미국식 교육에서 본받을 점

by 한양희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부하던 나는 캘리포니아 운전면허 첫 실기 시험에서 보기 좋게 똑 떨어졌다. 시험을 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늘 스트레스다. 나에겐 강박이 있는데, 모든 걸 잘 해내야 한다는 거다.


중학교 시절엔 중간, 기말고사마다 늘 울었다. 시험을 망쳐서도 아니다. 아는 문제를 틀렸기 때문이다. 많이 틀린 것도 아니고, 과목당 한 문제 정도랄까? 전 과목에서 3개를 틀렸을 때도 여지없이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재수 없네.’

지금의 나라도 ‘왜 저래?’ 할 일이지만 그땐 왜 그랬는지 시험에서 한 문제 틀리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올 100을 맞은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그때만 유일하게 울지 않았다. 그 전설과 같은 그 일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인간들과 전국구로 경쟁하면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시골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범위 내 시험을 잘 치러내는 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전국 모의고사에선 그게 잘 안 됐다.


대학 진학 후에도 내가 모든 평가에서 만점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는 걸 알고,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니 어떤 면에선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내가 모든 것에 대해 고삐를 풀 수는 없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일정 기준이 있었고, 그걸 계속해서 맞춰야 하는 게 내 성격인 것을. 토익도 980점은 돼야 하고, 운전면허도 한 번에 통과해야 했다. 그게 내 스스로에게 허락한 기준점이었다.

똑똑한 시동생과 휴스턴 미술관에서


캘리포니아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위해 운전국 앞에 길게 줄 서 있었다. 그날은 집안에서 천재로 칭송받는 시동생 창남도 함께 있었다. 참고로 그의 천재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나열하자면, 24살인 그는 2년 만에 대학과정을 마친 후, UCSF에서 박사과정 중인데, Science지에 1 저자로 3개의 논문을 싣고, 그 외 여러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기고한 바 있다. 창남은 너무 컴퓨터만 봤더니 머리가 아파서 바람을 쐐야 한다며 나의 시험 길에 동행해 줬다. 나는 시험에 앞서 필기한 노트를 붙잡고 계속해서 보고 또 봤다. 시험에서 덜어지기 싫었고, 아깝게 탈락하는 경우를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남에게 내 행동은 특이해 보였나 보다. 잔뜩 스트레스받은 나를 보며 창남이 말했다.


“누나. 내가 저번에 필기시험 볼 때, 단 한 번도 운전면허 관련 정보를 보지 않았는데, 합격할 수 있었어. 컴퓨터로 시험을 치는데, 같은 내용의 문제가 표현만 달리 해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 내가 오답을 누르면 화면이 정답을 알려주는데, 그때 그걸 학습하고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면 맞추면 되는 거야. 총 3번의 기회가 있어서 만약 바로 합격을 못하면 같은 날 연속으로 다시 시험을 칠 수가 있어. 시험을 치면서 배우고 공부하는 거지. 그래서 나도 그날 공부하면서 합격한 거야.”


시험 전 단단히 준비해야 마음이 놓이는 나에겐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나는 합격을 목적으로 8시간 정도 투자해서 문제를 적고 답을 외우는 작업을 했는데, 창남은 시험을 치며 학습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험의 목적이 얼마나 아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학습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꽤나 설득력 있었다. 물론 나는 내가 학습한 지식을 토대로 10분 만에 시험을 후다닥 치고 실기시험 합격이라는 결과를 획득했지만 말이다. 한국식 공부법과 미국식 공부법의 차이라고나 할까? 훌륭한 학습 성과를 내는데, 주어진 내용을 외우고 이해한 후 평가받는 것보다,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란 말인가?


최근 EBS의 다큐멘터리에서 서울대생의 공부 방법을 취재한 영상을 봤다. 자극적인 영상의 제목은 ‘서울대가 이 상태? 한국에서 더 이상 천재는 없다.’였다. 4.3만점에 4.1의 학점을 유지하는 학생들이 인터뷰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토시 한자 빠트리지 않고 받아 적은 후, 그를 그대로 외워 시험지에 옮겨 쓴다고 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교수님과 의견이 다르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를 답안지에 쓸 것이냐 라는 질문에는 교수님의 생각을 쓰겠다고 답변했다. 그래야 좋은 성적을 받을 테니 말이다.

https://youtu.be/CNrzvdcU9SE?si=L5h9pejenZiuSsB_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성적을 받는 학습방법에 대한 연구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필기를 얼마나 구체적이고 자세히 하느냐가 시험에서의 좋은 성적과 비례했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질문을 많이 하고, 교수님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는데 저해 요소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한국의 최고 교육기관이라는 곳에서 학생들은 교수들의 의견을 그대로 읊어대는 앵무새로 길러지고 있었다.


운전면허시험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합의된 법률을 따르는 것에 대한 학습법은 내가 한 방법처럼 외우고, 익힐 수 있지만 적어도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에서는 다른 학습법을 써야 할 것만 같다. 엉뚱하지만 창의적인 발상에서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구하는 방법들이 나오지 않았던가. 대학마저 학습한 내용을 평가받는 곳이라면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도 어두워 보인다.


내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제도권 내 삶 속에 정착하기 위해서 서울대를 가려 10대에 기를 쓰고 공부하고, 교수님이 심은 생각을 그대로 읊어대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의 귀한 청소년기에 자유롭게 놀고 자연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과거의 나처럼 시험 문제 하나 틀리면 삶이 끝나는 줄 아는 어리석은 마음을 심어 주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면, 혹여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세상에 득이 되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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