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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Jan 17. 2024

그리운 고향, 부산

2023년 10월, 우리 가족 한국 여행기

처음으로 가족 4명이 한 여행이라 걱정반 들뜸반 이었던거 같다. 혹시나 환절기 탓에 감기라도 옮아서 열성 경련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둘째 때문에 해열제부터 비상약까지 꼼꼼히 챙겨갔다. 집에서 샤르드골 공항까지 30여분 그리고 비행기 13시간 - 어른 체력으로도 쉽지 않은데 여정인데 다행히 한국행 비행기는 저녁 시간이라 아이들이 좁은 좌석에도 그나마 서너 시간 잠을 자주어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했다. 나는 원래가 잠자는 컨디션이 중요한 사람이라 비행기 안에서는 20분 남짓 눈만 붙이고 서울에 도착했다. 

문제는 서울역에서였다. 서울역 도착시간이 오후 5시였는데 부산 가는 기차가 올 매진이어서 당장은 입석도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찾고 찾아서 4명이 같이 타고 가려면 저녁 9시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 부산 도착은 새벽 1시. 

우리도 너무 지치고 힘든 데다 장작 4시간을 서울역에서 서성거리기도 애매하고, 찡찡대는 아이들을 두고 급하게 서울역 근처 호텔을 알아보았지만 막판으로 구매하는 거라 1박에 족히 35만 원을 들여야 좁은 호텔방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잠만 달랑 자는데 뭐? 35만 원? 

이왕 이렇게 시차가 뒤죽박죽 된 마당에 9시에 부산행을 끊었다. 우리는 48시간 거의 꼴딱 잠을 못 자고 부산에 가는 거라 심신이 아주 지쳐있는 상태인데 일단 부산역에 가기만 하면 엄마 아빠가 나올 테니 한시름 놓을 수 있으니까. 


부산까지 가는 시간 2시간 40분 남짓, KTX에서 졸려하는 아이들을 달래 가며 어찌 저찌 도착을 했다.

첫째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모양이다. 


피곤해. 침대에서 자고 싶어.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 집은 너무 멀어. 

새벽 1시까지 엄마 아빠가 잠을 안 자고 차로 마중을 나오는 덕분에 우리는 다소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꼭두새벽 2시에 생선 구워 밥 한 상 차리겠다는 엄마를 만류하고 싱싱한 전복만 간단하게 구워 요기하기로 하고 비로소 발 뻗고 잘 수 있는 침대에 누웠다. 토막잠을 자둬서 또 잘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번 고성을 지른 다음에야 아이들은 그제야 잠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6시에 나는 눈이 떠졌다. 

이걸 체력이 좋다고 해야 되나 불면증이 심각하다고 해야 할까. 

거실에 나오니 제법 쌀쌀하다. 엄마 아빠는 커피를 잘 안 내려 마시는지 커피 내리는 기계가 부엌 안쪽에 들어앉아 있다. 먼지를 닦고 커피를 찾아서 3스푼, 그리고 물을 부어두니 얼마 안 가 부릅 부릅 따뜻한 커피가 내려온다. 

내가 지금 부모님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 상황은 꿈인 걸까. 

피곤하고 몽롱하지만 행복한 이 기분. 

부엌 창문 사이로 산바람이 스산하게 들어오니 이건 꿈이 아니구나 했다. 부엌 인기척에 엄마도 방에서 나왔다. 부스스한 눈으로 새벽 2시에 외던 조기를 또 구울 심산인가 보다. 엄마는 멀리서 온 딸에게 뭐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인지 한국만 가면 밥타령이다. 조기를 굽는다 미역국을 끓인다는 엄마를 만류하고 아침은 프랑스식대로 그냥 빵에다 잼을 발라도 충분하다고 얘기하니 그건 또 쿨하게 그러란다. 

7시가 되어서야 아이들이 일어났다. 둘째는 여기가 어딘지 나는 어딘지 분간이 안 되는 얼굴이다. 다 같이 둘러앉아 빵에 요플레에 식사가 차려지고 평소 아침에 밥을 먹는 아빠도 빵을 한입 먹어본다. 정신 차리고 바라본 부모님은 이제 70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같다. 세월이 우리 부모님만 봐주고 지나가지는 않았을 테니, 깊은 주름이며 하얀 머리가 꼿꼿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아빠는 10일 남짓 부산에서 있는 동안 돌아볼 여정표를 A4 한 장 꼼꼼히 적어둔 걸 건넸다. "딸이 먹어야 할 음식 목록", "돌아봐야 하는 관광지" 

70대 할아버지여도 열정은 여전한 30대인가 보다. 어른이 소화하고도 쫙하다 싶을 여행목록을 3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다닐 거라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손자들한테 많이 보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를까. 

열정 가득한 아빠 목록에 비해 시차적응 안 된, 감기까지 달고 온 아들들은 영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다. 오빠가 우리가 잘 도착했는지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오빠가 잘 아는 지인이 요트를 한다고 주말이지만 지인 찬스로 좋은 가격에 요트를 태워주는 게 가능하다며 오늘 시간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열정 가득한 사람, 아빠 말고 우리 집에 또 있지. 

상황을 설명하고 토요일에 오빠네가 엄마 집으로 와서 하룻밤을 자고 일요일에 기장 롯데월드를 가는 걸로 결정이 났다.




아이들 4명이 다 같이 보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 오빠 네가 엄마 아빠 집에 도착하고 아이들의 반응이 어른들은 궁금해서 연신 카메라로 아이들 모습을 담기가 바빴다. 오빠네 큰 딸은 1년 전에 봤으니 그동안 훌쩍 자라서 말도 제법 잘했다. 둘째는 그때만 해도 누워있었는데 아장아장 걷는 걸 보니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저 아이들은 알까. 자기들이 핏줄이 섞인  사촌지간이라는 걸.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가 곧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걸 알까. 


아이들이 있으니, 자연히 모든 일정은 아이들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엄마 아빠가 우리 어릴 때 말고는 롯데월드를 이 왁자지껄한 장소를 이렇게 와 볼일이 있을까? 

큰 아이는 제법 커서 탈 수 있는 기구들이 많은데 다른 아이들은 꼬맹이들이라 탈 수 있는 기구에 제한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런 놀이 공원을 프랑스에서도 가본 적이 없으니, 아이들은 연신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한번 타고 재미를 느낀 기구를 또 타려면 대기 시간이 적어도 30분은 됐다. 그래도 30분은 꾹 참고 기다릴 수 있는지 처음 타보는 기구의 맛이 무서운데 재미도 있고 짜릿도 하고 뭐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지. 

프랑스에서 공원에서 자전거 타고 윙윙 타고 다녔지 이런 자본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지.

웅장하고 멋진데 사람도 너무 많고 정신이 없다는 표현이 제일 맞는 거 같다.  

점심도 일부러 12시를 피해 시간을 좀 앞당겨서 들어갔는데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10명의 인원이 같이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어서 두 테이블로 찢어져서 밥을 먹었는데 물 뜨랴 메뉴 받아오랴, 애들도 정신이 없고 나도 정신이 없고... 자본의 맛은 참 달콤하면서 편리하고 좋은데 그래도 너무 정신이 없다.  


주말을 이렇게 왁자지껄하게 보내니 아이들이 웬일로 일찍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아빠랑 엄마랑 앉아서 맥주 한잔을 했다.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낸데? 아 아기를 낳았데? 
삼촌네는 어떻게 지낸데? 
그 아줌마네 아들은 아직도 장가를 안 갔데?
의상실 하는 아줌마는 잘 있어?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할 얘기 산더미이다. 그리고 엄마가 들려주는 그 아줌마가 이 아줌마고 저 아줌마는 그 아줌마고 그런 얘기가 재미있다. 엄마는 60대가 훌쩍 넘은 나이에 로망이던 카페를 열어보겠다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시험을 볼 때도 자기가 제일 나이가 많아서 웃겼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자격증 준비를 하던 몇 살 어린 동생이라는 아줌마는 같이 카페를 내자며 자주 회유를 하는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사간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벽에 걸고, 엄마는 커피를 얼마를 팔아서 마진을 얼마를 남기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엄마 친구들 다 나이가 들어서 도란도란 앉아서 따끈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하얀색 깨끗한 벽지에 프랑스 소품이 걸려 있고 그 위로 작은 덩굴 나무도 한 두 개가 놓여 있고, 휘낭시에나 마들렌이 유리 장식 안에 전시되고, 웅장한 커피 기계가 딱 버티고 있는 그 자리에 갈색 앞치마를 두른 엄마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처음으로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졌다.

일상에서 있는 많은 일들, 엄마의 커피 프로젝트 이런 것들을 곁에서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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