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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Jan 19. 2024

눈 오는 파리

지긋지긋한 불면증 

한 일주일 또 심각한 불면증이 계속됐다. 

이상하게 불면증에 머리가 몽롱한 날은 나는 브런치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 새벽 3시인데 일어나서 브런치를 적을까? 아님 덮을까?' 

한참 몽상 많은 시간이 그 시간인가 보다. 


불면증은 독일 살던 시절부터 함께 해오던 동반자라 나는 한 달에 잘 잔 횟수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면 심각한 수준인 거 같다. 커피도 끊어보고 운동을 엄청 해서 체력을 거의 바닥으로 떨어뜨려보기도 하고, 자기 전 목욕도 해봤다가 데워진 우유도 마셔보고 - 약도 먹어보고 

에라이 진짜.  너랑은 그냥 평생을 같이 가야 되는 친구인가 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젊다는 그 혈기 하나로 버텨왔다. 2시간만 잔 날도 아침에 이 닦고 세수하고 나면 8시간 잘 잔 사람처럼 낮 생활은 또 하니까. 작년에 직장에서 해고 조치를 당했을 때도 당장 일어나서 해야 할 미팅이 주어진 업무가 하루아침에 없어졌을 때도 7시면 그냥 일어났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더 자볼수도 있겠지만 난 이불이 주는 그 포근하고 게으름의 세계로 이끄는 강력한 힘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하루면 괜찮겠지는 일주일이 될 테고 한 달이 될 테고 나는 내게 험한 말로 왜 좋은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냐며 모질게 자책하는 그게 더 싫기 때문에. 

불면증 때문에 늘어지는 내가 싫다. 

근데 이제 4학년이 (올해로 마흔이 되었음) 되었기 때문에 이젠 그 믿는 체력도 바닥이라는 게 가늠이 갔다. 그렇게 심각하게 이틀을 못 잔날은 가슴이 벌렁벌렁하기 시작하고 '숟가락, 젓가락' 같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도 불어로 기억이 퍼뜩 안 난다. 그렇다고 시중에 나와 있는 약도 듣는 날은 듣고 안 듣는 날은 안 듣고. 

약을 먹어 머리가 더 멍청해지고 있나 싶어서 약도 함부로 못 먹겠다. 

그러다 보니 흰머리는 매일 아침 뿅 하고 솟아나고 얼굴은 퀭한 채로, 아침에 미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고 나면 또 아침이 되었군 되뇐다. 이게 대체 언제가 돼야 괜찮아질는지. 

나이가 들면 잠이 더 준다는데, 나는 그럼 나중에 아예 잠 안 자는 초싸이언이 되나. 


가방을 만들겠답시고 자르고 재봉하고 만들고 사람들 만나고 사진 SNS 올리고 하다못해 음식 만드는 유튜브 까지 시작하다 보니 나 같은 슬로우 어답터에게 이 모든 변화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틱톡 같은 것은 보통 영상이 3초 내로 파악이 돼야 하기 때문에 임팩트가 중요한데 이런 것들을 임팩트 만들어봤어야 말이지. 

영상 편집이야 해본 적이 있어서 금방 다시 한다고 해도 요즘 트렌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건지. 

매일 전화기에, SNS를 붙들고 살다 보니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인데 더 예민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당장에 어떤 결과를 보려고 하는 내 급한 성격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무언가를 잘 못해서 그런가, 어떤 부분을 더 수정해야 하나 이런 조급함이 발목을 잡는 거란 생각이 든다. 

왜 모든 문명의 발전은 이렇게 복잡한가. 

앞으로 AI 가 더 발전하면 나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 

4학년인데 지금 이렇게 버벅대면 5학년 6학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 되는 건가. 

그렇다고 지금 이렇게 박차고 회사를 나와서 망망대해에 홀로 섰는데 이 모든 전반적인 흐름이나 트렌드나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는 척이라도 하면서 이해라도 해 볼 노력 정도는 해야지. 

전에는 안 맞는 옷이면 안 입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살을 접어서라도 입기는 해 봐야지 이런 태도로 바뀌었다. 

불면증이 고쳐질 리 없지. 


 



어김없이 깬 새벽에, 

서걱서걱 - 창문 밖에 인기척이 있다. 

어? 도둑은 아닌데 느낌이 이상하다. 

창문 밖 슬라이드를 올리고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조용히 눈이 내린다. 

나무 위에도, 지붕 위에도, 심지어 쓰레기통 위에도 고루고루 하얗게 내리는 눈은 아름답다. 

이 시간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이 얼마나 될까. 

창문에 김이 서릴 만큼 한참을 눈을 바라봤다. 어차피 지금 누워도 잠이 안 올 거 눈이 나 실컷 보자 싶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기분이 좋다. 

아침에는 내가 몇 시간을 잔 거냐 이렇게 안 자다가 건강에 무슨 무리가 오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은 당분간 접기로 했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며 또 아침이 됐나 이런 짜증이 밀려오더라도 지금 기분 좋은 걸로, 더 이상 다른 생각 하지 말자. 

아들이 만든 꼬마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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