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무너지는 마음을 잡고.
나는 안 그래도 잔걱정이 많아 불면증이 잦은데 아이가 아픈 날은 이틀에 2-3시간 정도만 거의 기절하는 형태로 자기 때문에 가끔은 어떤 정신력으로 버티고 사는지 나 스스로도 궁금할 때가 많다.
한 번은, 둘째가 저녁을 안 먹고 바로 자고 싶다고 하길래, 안 그래도 열이 있어 심상치 않다 생각하던 차에 아이를 눕히고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아이 방에서 외마디 '꽥' 하는 소리가 나서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이미 경련을 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엎드려서 힘들게 경련하는 아이를 들어서 옆으로 눕혀 기도를 확보하고 서야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낀다.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대신 아파 줄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그러고 싶다.
그때부터 내 마음 안에 뭔가 트라우마란게 남은 것 같다.
경련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목소리라도 들려주며 '괜찮다고' 엄마가 꼭 옆에 있겠노라고 얘기해 주겠다 결심했다.
경련을 하는 모습은 매번 목격하는 것은 엄마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내 새끼가 숨이 꼴딱 넘어갈 것처럼 온몸이 퍼레지는 것을 보면 나는 그 상태로 마치 지옥 불구덩에 있는 거 같다.
열성 경련은 흔하디 흔하다는데 세상에 나 혼자만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거 같을까..
그래, 너도 고될 테지.
다섯 살이면 열성경련을 앓던 아이들의 대부분이 징후가 호전된다는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약물 치료를 한번 끊어보기로 했다. 환절기마다 아이가 잔열이 있을 때마다 내심 가슴을 졸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자라서 인지 경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인가 보다.'
크리스마스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하루 앞둔 주말,
점심때까지만 잘 놀던 둘째가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티비를 보다가 소파에서 2시간을 내리 잤다. 열을 재보니 39도.
경련은 없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이 옆에 자야 맘이 편할 거 같아서 저녁을 대강 먹고 9시 즈음 같이 자러 들어갔다. 한 한 시간 반쯤 잤을까. 아이는 경련을 하고 있다. 지난번과 같이 꽥 소리는 없었지만 경련을 하면서 떨리는 몸 때문에 침대가 들썩거리는 걸 깜깜한 가운데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잠이 안 오더라도 좀 누워 있어 봐.
니가 그렇게 뜬눈으로 보초를 선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남편은 내게 용쓰지 말라고 했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쉽게 잠들 수 없을 거 같았다. 자칫 잠이 들면 이대로 어마어마한 악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왜.
이제 다 컸는데. 또 왜.
왜 또 경련을 한단 말인가.
베갯잇이 흠뻑 젖도록 나는 울었다. 뭔가 억울했다. 아니면 울분인지도. 또다시 시작된 트라우마 때문일까. 심장이 뛰는데 쪼이는 느낌이 불편하다.
눕지도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자기가 밤 동안에 아이와 잘 테니 한숨 자라고 했다. 밤 사이에 서너 번을 경련을 하는 것을 옆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려고 누웠지만 나는 오늘 잠을 못 잘 테니까. 혼자 감당할 남편이 안쓰러워 나는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둘 다 밤을 꼴딱 새우고 초췌한 모습으로, 서로가 참 안 됐다.
응급 소아과를 가는 차 안에서 다섯 번째 경련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큰 병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울었더니 나오는 눈물이 없다. 뭔가 독기가 서려서 울고 싶지 않다고 해야 맞는 거 같다.
여러 검사를 한 뒤에, 3시간도 안되어서 우리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물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다. 확연하게 하루에 5번 경련을 하더니 아이의 말이 조금 어눌해졌다. 우리 아가... 언제쯤이나 괜찮아지려나.
신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건지.
그리고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했더니, 아이는 괜찮아지고 개학 일주일이 지나서야 학교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꼬박 몸살에 시달렸더니 식욕이 사라졌다. 그래. 아이를 위해서 대신 아플 수 있을 거면 나는 백번이고도 이 고생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삶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집에 아픈 아이가 있으면 그 롤러코스터 코스는 더 드라마틱해지지만.
철 모르고 20대를 보냈고 서른 중반에 내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작은 존재가 태어나서 환한 기쁨도 있고 세상 꺼져가는 슬픔도 느껴보고, 무채색 같던 내 삶에 너희는 한줄기 빛 같았다.
그래도 아프지 말자. 주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