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로소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오.
독일에 사는 지인이 페이스 북에 사진을 올렸다고 핸드폰 메시지가 떴다.
프랑스는 바로 옆나라이기도한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독일이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먼 곳이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어떤 의미심장한 사진을 올렸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렇게 기술이 발전해서 그의 소솔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그의 사진을 봤다.
와인사진, 음식 사진 그리고 꽃사진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사진에는 뭔가 모를 감미로움이 있다.
여리여리한 이름 모를 꽃부터 색이 빠알간 꽃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잔잔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대도 나이가 드는가 보오. 이리 꽃사진을 많이 올린 것을 보면...
그냥 사진만 구경하고 가기 못내 아쉬운 마음에 답글을 남겼다.
한 시간도 안되어 그에게 답장이 왔다.
'그런가 봅니다.'
봄이 되면 벚꽃 사진이나 목련 사진을 올리고 잠깐 시내 구경 나올 때도 길가에 핀 꽃도 잊지 않고 찍어 올리고, 그는 참으로 음유시인이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그의 음악회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는데, 그의 차분한 성격과는 다르게 그의 음악은 창창하면서도 탱탱한 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탠션이 느낌에, 음악을 모르는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곡으로 기억한다. 알 수 없는 듯한, 어울리지 않는 화성으로 찢어질 듯한 피아노 음색의 어우러짐에 나는 그날, 그란 사람을 다시 본적이 기억이 있다.
그런 그에게도 세월이 흘러 눈가에 주름이 번지고 꽃을 좋아하는 나이 든 중년이 되었다.
길에 핀 민들레 하나 거들떠보지 않던 내가 이렇게 꽃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러고 보면 참으로 변화무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동네에 장이 일주일에 두 번 서는데 제철과일이며 싱싱한 해산물을 팔아서 꼭 살 것이 없더라도 나는 장을 들르는 것을 좋아한다. 동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사는 작은 마을이라 장이 크진 않아도 정감이 있다. 그 사장에 가면 어김없이 들르는 곳은 역시나 꽃을 파는 아저씨 집이다.
길가에 내어다 놓은 꽃들의 향연을 보고 있자면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오늘은 사면 안된다'를 되뇌인 다음, 그 집을 겨우 빈손으로 벗어날 수 있다.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꽃을 사 온 날은 요상하게도 그 아이가 열흘을 견디지 못하고 잎이 갈빛으로 변하더니 한 달 내에 죽어버려서 난 참, 식물 키우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게 꽃집의 저주 같은 건지, 나는 유독 시장에 파는 꽃을 집으로 들여만 오면 왜 꽃이 오래 견디질 못할까.
매번 살 때마다 꽃집아저씨를 달달 볶아, 이 식물은 해를 좋아하는 아이인지, 물은 얼마나 줘야 자주 줘야 하는지, 분갈이할 때 조심할 점은 무엇인지 꼬치꼬치 따져 묻고 더불어 구글의 도움을 받아 그 꽃나무를 공부하고 그에 맞게 해 주어도 우리 집 문턱을 들어오는 꽃은 꼭 한 달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꽃이 없는 나무들만 사다 모았다. 그들은 비교적 키우기가 편했다.
아름다운 꽃을 내주지는 않아도 가지가 시듦이 없이 파란 어린잎을 계속 내어주는 거 보면 나는 그래도 합격점인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 방학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아버님 댁을 갔는데, 창가마다 파랗고 노랗게, 빨갛게 핀 꽃들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은 나무나 꽃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셨는데 혼자 사시는데 그 많은 꽃모종을 사다가 분갈이를 하시고 알록달록하게 매치해서 창가에 두신게 참으로 상상이 갔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꽃화분 옆에 앉아서 따끈한 커피를 들이켜는 일은 참으로 황홀했다. 붕붕 하고 벌이 꽃 사이를 오가는 것도 듣기가 좋고 말갛게 핀 꽃들을 보자니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땅이 말라가는 거 같아 꽃이 시들 거 같다고 말씀드리니 아버님은 이틀에 한번 꼴로 물을 흠뻑 주니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나에게만 적용되는 그놈의 꽃집의 저주에 대해 아버님께 왜 그럴까 여쭐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는 이미 돌봐야 되는 이들이 많다. 기운찬 아들도 두 명도 있고, 간간히 사모은 나무들도 사실 집에 많다. 나무 당번인 내가 한여름에 모기를 물려가며 물을 주는 것은 가끔 고역이때가 있다.
더구나 꽃은 여러 번 말려 죽여보았으므로 이제는 집에서 그런 영화를 보겠다고 꽃을 더 이상 죽이는 일은 없어야지 했다.
이거 봐봐. 너한테 딱 맞는 어플이야.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어플을 하나 보여주었다.
그 어플은 그 지역 (또는 다른 지역도 검색해 볼 수 있음)에서 레스토랑 또는 슈퍼마켓 등 그날 팔아야 할 물건을 다 못 팔면 저녁 8시부터 대폭 할인으로 싼 값에 식자재나 식사를 살 수 있는 어플이었다. 주로 바게트 빵이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요플레, 또는 초밥 등 이런 구성으로 저녁에 되면 그런 리스트를 보는 게 나름 쏠쏠했다.
내가 가장 즐겨보는 것은 그래도 꽃집이었다.
꽃이나 잎이 시들어 나무를 손님에게 제값을 주고 팔기는 어렵지만 아직 생을 연명하고 있는 아이들을 한 박스 모아서 15유로에 팔기에, 그날은 미쳤는지 내가 덥석 구매를 눌렀다.
내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 집에는 요리를 안 한 채소 재료나 커피가루, 과일 껍질을 모아 퇴비를 만드는데 그 퇴비를 2년 정도 묵혀두니 지렁이들이 스멀스멀 자라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의 죽어가는 나무를 화분갈이를 하면서 그 퇴비를 섞어 물을 듬뿍 주었더니 마른 가지 사이에서 연한 잎이 나오는 걸 보았다. 다 시들어 가는 갈색 가지에서 연한 파란 잎이 나오는 것은 내게 가히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나무에 그 퇴비를 섞은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정성 때문인지 개똥철학인지 모를 강한 믿음 때문인지 그 이후에는 나무들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감하게 다시 꽃을 키워 보고 싶은 마음에 15유로 바구니에 앉은뱅이 꽃 같은 보라색 아이를 같이 데려왔다.
볕이 잘 드는 마루에 퇴비를 한층 깔고 흙을 잔잔히 솎아 꽃을 심어두니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이 기뻤다. 어쩜 저리 고운 보랏빛을 낼까 싶으면서도 꽃 사진을 여러 각도로 돌아가며 찍었다. 아직 꽃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박아둘 만큼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꽃을 보며 미소 지어지는 것은 나도 마흔 줄에 들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하나하나 꽃나무로 사모으기 시작했다.
꽃나무가 시들어가면 나는 퇴비를 줄 것이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고 그가 져버린 그 자리에 그 이듬해가 되면 어김없이 새싹이 돋아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는 고맙게도 전 해에 보던 같은 꽃을 내주었다.
이제 9월인데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다소 쓸쓸하긴 하겠지만 나는 그다음 해 봄을 기다릴 거다.
보랏빛 꽃들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