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조셉 Jul 22. 2020

둘째는 수월타

둘째 출산 그리고 60일이 지난 지금

잠잠이를 출산한 지 벌써 60여 일이 지났다.

매일 두서너 시간씩 깨워서 안 나오는 젖을 억지로 물려야 했던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 어느 때 일어나고 먹는지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거 같다. 저녁에는 여전히 영아 산통이 있어 9시 잠들기까지 뺑~하고 울어대기 일쑤이지만 이미 첫째를 통해 숱한 경험을 해 본 탓에 둘째 케어는 식은 죽 먹기다.


첫째 때에는 심한 배앓이 탓에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통에 우리 부부가 반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100일이 되어서야  영아 산통이 기적처럼 잦아들기 시작해서 첫 석 달은 시도 때도 없이 젖을 물렸다. 젖만 물리면 모두가 그나마 편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첫째 때에는 출산  엄마가 한 달 정도 프랑스를 와서 밤 교대를 해주었다. 엄마의 수유 콜(?)이 있으면 나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한 십 여분 수유를 끝내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면 나머지 기저귀 가는 일 그리고 재우는 일은 엄마 담당이었다.  아침 7시가 되어서 나에게 인수인계를 하고서 엄마는 방에 조용히 들어가셔서 한 두어 시간 쪽잠을 주무시곤 했다. 엄마는 7월, 그 더운 여름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했다. 딸내미 산후조리를 해주겠다시며 젖이 잘 돌게끔 당근 수제비, 제육볶음, 간장 떡볶이 등 매일 새로운 재료로 요리를 해주셨다.  

그렇게 밤낮이 뒤바뀐 생활에 부엌에서 주구장창 서서 일하던 엄마는 한국에 돌아갈 때 즈음 한 달 만에 5킬로가 빠졌다. 나는 아빠와 오빠에게 엄마를 왜 이렇게 고생시켰냐는 몰매 맞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 당시에 나 자신도 산후 우울증 때문에 스스로가 감당이 안될 때여서 그 마저도 없었으면 나는 정말 영영 육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둘째 출산 때도 엄마는 마지막일지 모를(?) 딸 산후조리를 단단히 해주시겠다고 프랑스로 오시려고 했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결국은 계획이 무산되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아쉽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이 판국에 유럽을 온다는 것도 엄마에게는 부담일 수 있고 이제 엄마도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내가 더 이상 무리하게 부탁을 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새언니도 임신 중이어서 엄마가 이래저래 신경 쓰는 부분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출산 석 달 전부터 소꼬리, 닭뼈를 사다가 매일매일 고아 두고 미역국도 넉넉하게 끓여서 냉동고에 차곡차곡 쟁여두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병원에서 퇴원함과 동시에 산후조리는커녕 바로 육아 전면 돌입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그 모든 준비를 착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고 프랑스 남편이 미역국이란 걸 끓여줄 사람이 아니거니와 시댁에 어떤 원조를 받은 것도 되려 내가 부담일 거 같았다.


60여 일이 지난 지금 여전히 밤에 한두어 번 깨긴 하여도 쪽쪽이 물려주면 스르륵 혼자 잠이 들고 그 흔한 등센서 하나 없다. 지 엄마가 고생하는 걸 아는가 보다. 둘째가 울어댈 때에도 지금은 가슴이 콩닥콩닥하지 않는다. 수백 번의 경험을 통한 결과 이리라.

둘째가 수월타 말은 여러 번 들어보았어도 실제 경험을 해보니 그러한 거 같기도 하다. 나의 멘탈이 좀 더 강해진 면도 물론 있겠지만.

이번에는 산후 우울증도 없이 모든 게 진행이 수월했다. 쳇바퀴 흘러가는 일상, 육아가 즐거울 수가 있을까 싶지만 요즘에는 되려 그래도 하루하루가 보람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