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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Jul 27. 2020

나 홀로 산후조리

바게트 그리고 미역국

아들 둘 모두 프랑스에서 출산을 하였기 때문에 사실 상 산후 조리란 것은 나에게 어느 먼나라의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자면 병원 퇴원 후 소위 말하는 조리원 "천국"에 입성하여 산후 조리를 받는 것이 보통 일반적이다. 그 곳에서 자연스럽게 조리원 엄마 모임이 만들어지고 아기들 성장 발달 상황이며 기타 육아 정보도 함께 공유한다고들 하던데 - 아쉽게도 나는 그런 혜택을 누려보지 못했다. 그런 조리원 동기 엄마들은 육아 전쟁에 돌입하기 전 함께 훈련을 받는 든든한 전우와 같은 존재일 거 같다. 나는 그런 동지 없이 먼나라에서 홀로 육아 전쟁을 치뤄야 했다.

더욱이나 프랑스에서는 산후 조리 문화라는 것이 아예 없어서 처음에는 남편을 이해시키는 데만 하여도 애를 먹어야 했다. 세계 몇개 국가에서만 존재한다는 산후 조리 문화는 단연 프랑스 시댁에서도 이해할리 만무했다. 시댁에서는 삼칠일 동안에 꽁꽁 싸매고 집에만 들어 앉아 있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긴.... 여기서는 출산을 하고서도 그 다음 날 민소매 차림으로 아기와 산책을 나다니는 엄마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시댁 어른들이 보시기에 내가 좀 유난하다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놈의 산후 조리인지 뭐신지가 되게 답답하다고 여겼을지도...


이번에는 100일 전에는 왠만하면 시댁 투어를 하지 않기로 혼자 마음을 먹었다. 첫째를 출산하고 멋모르고 두 달도 안된 갖난쟁이 아기를 데리고 2시간이나 차를 타고 시댁을 가는 일이 있었다. 그 때는 그런 것이 프랑스 문화이고 마음이 불편해도 그게 며느리 도리인가 부다 했다. 시댁에서 장작 식사도 그리고 잠자리도 불편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끔찍한 3일을 보냈다. 식사는 메뉴의 문제를 떠나서 보통 프랑스 식구들은 식사 시간이 늦고 (점심식사는 오후 2시 시작 / 저녁식사는 9시 즈음) 젖을 먹이는 나는 보통 사람의 식사 시간과 다르게 신생아의 배꼽 시간에 따라야하므로 느긋하게 그리고 남들이 다하는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지킬 수가 없었다. 첫째는 영아 산통이 극에 달에 밤낮이고 얼굴이 퍼래져서 온몸에 기를 쓰고 우는 탓에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나 홀로 우는 아이를 달래랴 안아 재우랴 진땀을 빼야했다. 시댁 어른들께 갖태어난 아기 얼굴을 보여주자고 내가 미친 짓을 감행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산모를 위한 산후 조리는 커녕 이것은 육아 노동의 끝판왕이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덜너덜해진 나는 시댁에서 돌아오는 길에 둘째를 낳게되면 100일 전 외출은 다시는 없으리라 다짐하고 또 했다.



이번 해 잠잠이를 출산하고서 친정엄마가 못오시는 관계로 산후조리는 나 홀로 어떻게든 해야 했다. 삼칠일 동안에는 냉동고에 얼려두었던 국이란 국은 모조리 작살을 내고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이째 국을 더 끓여둬야 했다. 엄마가 누누이 강조하건데 산후 풍이 들면 평생을 고생한다고 하는데, 이리 멀리까지 시집와서 친정엄마가 끓여주는 국 한번 못먹는 것도 서러운데 산후풍이 들어 나중에라도 이곳 저곳이 아프면 더 억울할 거 같았다. 프랑스 남편은 그 "산후풍"이란 것이 무엇인지 상상도 못할 뿐더러 그 뼈가 시리고 쑤시는 오묘한 상태을 내가 프랑스어로 어찌 설명할 자신도 없다.  


병원에서 지내는 4일 동안도 국이랑 커녕, 국물이라도 자작한 스튜 비스므리한 것도 구경을 못했다.

아침에는 단촐하게 바게트 반쪽, 버터 그리고 빵에 발라 먹을 수 있는 잼과 함께 커피 또는 따뜻한 초콜렛 한 잔

점심에는 파스타 그리고 야채 조금, 치즈 한조각 그리고 저녁 메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 양의 문제라기 보다 나는 단순히 미역국을 먹고 싶었다.

이런 단촐한(?) 식사에도 프랑스 여자들은 젖이 잘 도는 모양이다.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은 젖이 돌지 않아서 2시간씩 젖을 물리는 시늉만 했을 뿐이지 나머지는 분유가 아기의 배고픈 허기를 채워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국에 밥만해서 말아 먹는 수준이었다. 밑반찬이며 하다 못해 그 흔하디 흔한 김, 김치 등도 집에 없었다. 매끼마다 미역국을 사발채 들이키는 나는 우리 남편에게 아마 식신 그 즈음이었을 거다. 그렇게 삼칠일을 꼬박 집에 온전히 들어 앉아 밤이고 낮이고 젖물리고 기저귀 갈고... 그야말로 신생아와의 밀착 동거가 시작된셈이다.


지금 둘째가 70일을 맞는 이 즈음,

지난 70여일을 돌아보자면 하루를 어떻게 보낸 것이 아니라 하루를 버텼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일 거 같다. 시간은 물론 이래나 저래나 흘러가지만 막수(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오늘 하루가 또 무사히 갔구나 이런 생각이 더 많았다. 나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오늘 하루 잘했다." 를 다섯번 외쳤다. 그래. 살아 남아야 한다. 육아 전쟁에서든 홀로 하는 산후조리에서든 모든 것이 홀로 맞는 이 하루하루를 버텨내야한다. 그리고 잠잠이는 100일을 맞이할 테고 그러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요즘에는 국을 들이째 끓이는 일이 없다. 여전히 수유를 하고 있긴 하지만 완모 (완전한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 상황이 되는데로 열심히 수유를 해보다가 시기가 되면 단유를 할 생각이다. 아기에게 모유를 주는 것도 아주 보람되고 뿌듯한 일이지만 나 또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복한 육아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 내가 훌훌 털 수 있는 길인거 같다. 단유를 하는 그 날, 와인 한잔에 바게트에 얹어진 치즈를 음미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오늘도 열심히 또 달려보자.

모든 육아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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